[누가복음 6장] 안식일의 주인 (예수의 가르치심)

[누가복음 6장] 안식일의 주인
(예수의 가르치심)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기 원하는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신앙인들의 바른 삶의 모습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 주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교훈과 삶의 방식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신앙으로 응답할 것은 우리가 담대히 응답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예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생명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내용을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안식일을 범했다고 정죄했으나, 예수께서는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분명하게 선언하셨다(1-5절).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서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셨는데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정죄했으나,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씀하셨다(6-11절).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후에 열두 제자를 세우셨다(12-19절). 그 후에 평지에 서셔서 여러 가지 교훈들을 들려주셨다(20-49절).

[1] 안식일에 선을 행함 ( 6: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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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안식일에 관한 바리새인의 비난과 예수의 대답.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11) 안식일에 오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
6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ㅁ 능력을 나타내시는 예수

ㅇ 예수님의 안식일 선포 (1-11 )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하여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선포하셨다. 이 말씀은 자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이심과, 구약의 안식일에 관한 말씀이 그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즉 안식일의 근본 취지가 예수님에 의해 완전히 실현된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송사할 빙거를 찾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하는지 살펴보았는데, 이들은 근본적인 하나님의 뜻보다는 형식적인 것에 매여 있었다. 그래서 안식일에 소나 나귀는 웅덩이에서 끌어내도 좋다고 하면서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의 근본 취지에 따라 옳은 일을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그분을 고소할 명분 찾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의 행하시는 일을 보고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 중에는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예수의 고쳐 주심을 바라며 그의 앞에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예수는 치유의 이적을 행하신다. 예수께서 능력을 행하시는 것은 불쌍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사랑이 우리를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안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베푸실 영원한 안식(히4:9-11)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열심을 다해 생명을 구하는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2] 열 두 사도를 택하심 ( 6: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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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열 두 사도의 선정.
12 [열두 제자를 사도로 택하시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19)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을 고치시다.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ㅇ 열두 사도의 임명 (12-19 )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세우기 위해서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셨다. 우리도 무슨 일이든 결정하고 실행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그 뜻에 따라 행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 열두 사도는 매우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어부, 세리, 실업자 등 하찮은 직업의 사람들이 많았으나, 주님의 성령에 힘입어 세상을 크게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들을 하였다. 우리 역시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예수님께 접붙여질 때 놀라운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3] 예수의 강화 ( 6: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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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 산상의 설교.
(20-26) 복과 화.
20 [복과 화를 선포하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ㅁ 펑지 설교

ㅇ 복이 있는 자와 화 있을 자 (20-26 )
복이 있는 자는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인자로 인하여 고난받는 자, 즉 하나님 나라를 절박하게 소망하는 자이다.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고 고난받는 자들은 다른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모한다. 이러한 자들은 주님을 향한 복된 자들이다. 그러나 화 있을 자는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자이다. 이들은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며, 변화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복 있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4] 공의와 자비에 대한 권면 ( 6:2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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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6) 사랑에 대하여.
27 [원수를 사랑하라]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ㅇ 예수님의 사랑 (27-30 )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서 무조건적이며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ㅇ 황금률 (31 )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마7:12). 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의 자세이다. 그래서 선행을 베풀 때도 보상을 바라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바라보아야 한다.

ㅇ 사랑의 법 (32-36)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다(레19:18).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생각한다면 이 말씀을 지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생각하고 우리도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바른 삶을 살아야 하겠다.

[5] 공의와 성실 ( 6:3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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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8)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될 것.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42) 사람을 인도하는 자는, 먼저 자기를 반성할 것.
39 [네 눈 속에 있는 들보]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45) 마음과 행위. 성품과 생활의 관계에 대하여.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49)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행치 않는 자의 비유.
46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아니하는 자]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ㅁ 삶의 교훈을 주심

ㅇ 비판하지 말라 (37-38)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헐뜯고 중상하는 생각이 있다. 상대방을 깎아내려서 자기가 높아지려는 나쁜 마음이다. 비판하기에 앞서 그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있다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도 그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으로 보답할 것이다.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선으로 보답이 돌아올 것이다.

ㅇ 들보와 티 (41-42 )
이 비유는 남의 잘못을 들추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펴보라는 뜻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기준을 자기 생각에 맞추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남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그래서 남의 잘못은 크게 보고 자기 잘못은 잘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성도는 항상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허물을 고쳐 나가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남이 나에게 저지르는 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ㅇ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음 (43-45)
나무를 구분하는 것은 그 열매가 무엇인지를 보고 알 수 있다. 사과를 맺는 나무는 사과나무이다. 이렇듯 열매는 그 나무를 구분하게 하는 기준이 된다.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용모가 아니라 그가 행하는 일이다. 사람의 행실이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게 한다. 사람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다면 그의 행실은 악한 것이며, 반면에 그 마음에 선이 가득한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악을 버리며 선을 취해야 할 것이다.

ㅇ 반석 위에 지은 집 (46-49)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그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인간의 죄악된 속성을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에 선한 것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에게서 이제 선한 행실이 계속되어질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사람은 마음이 악한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이다. 그에게서는 악한 행실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기쁨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다.

결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말씀을 듣기 원하는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인간의 죄악된 속성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자신을 말씀에 복종시키고 말씀이 지시하는 것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선한 행실에 따른 상급이 주어진다.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예수께서 보장하신 것이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상급이다. 신앙인들의 바른 삶의 모습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 주신 것이다.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생명이 예수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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