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삭개오의 구원과 열므나 비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본장에서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지금까지의 예루살렘을 향한 긴 여행이 본장에서 끝나고,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십자가의 수난 및 부활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마지막 한 주간이 시작된다.
본장은 내용상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삭개오를 만나시는 부분(1-27 절)과 므나 비유(11-27절)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부분(28-48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세 내용은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시다가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만나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1-10절). 그리고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11-27절).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 둘을 보내어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데려오도록 지시했다. 그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셨는데 많은 무리들이 호산나 찬송하며 환호하였고, 입성 후에 성전을 정화하시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28-48절).
[1] 세리장 삭개오의 회심 ( 19:1-10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10) 세리장 삭개오의 구원.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ㅁ 구원받은 삭개오
ㅇ 세리장인 삭개오 (1-2)
삭개오는 여리고의 조세를 책임지고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며, 그 지위를 이용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이로 인해 동족들로부터는 매국노, 착취자,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여리고 성의 세리장이었다. 이러한 직업으로 삭개오는 부자로서 별 어려움이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지만 그는 일반 민중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ㅇ 예수님을 만나는 삭개오 (3-8)
삭개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을 보고자 나아갔다. 삭개오의 구원 과정을 보면, 먼저 그는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당했다(7절). 예수님을 보려는 열망으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다(4절). 예수님이 구원을 갈망하는 순수함과 갈급한 심령을 보시고 그의 집에 유하셨으며(5,7절), 삭개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6절). 그리스도에 의해 생의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삭개오는 자신이 행하려고 결심한 바를 선언한다(8절). 이것은 자발적이며 율법의 요구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ㅇ 아브라함의 자손인 삭개오 (9-10)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자 삭개오는 크게 기뻐했다. 그는 즉시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시자 구원을 체험한 삭개오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고 했다. 이러한 변화된 모습에서 진정한 회개임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참된 회개와 전적인 자기 포기에서 우러나온 구제의 고백을 보시고 구원이 삭개오의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인 삭개오를 이제 하나님 메시지를 받아 들임으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메시아의 구원을 얻게되었음을 선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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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열 므나를 종들에게 맡기는 비유.
11 [은 열 므나 비유]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ㅁ 열 므나의 비유
ㅇ 먼 나라로 가는 귀인 (11-14)
비유에서 귀인은 자신이 맡긴 일을 종들이 얼마나 성실하고 충성되게 이행하는 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열 명의 종을 불러 한 므나씩 주고 떠났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셨다가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도록 맡겨 주신 명령을 얼마나 잘 이행했는 지 보신다는 의미이다. 귀인의 행동에서 우리는 그가 종들을 신뢰했으며 또 종들의 충성 여부를 시험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왕이 없는 동안의 종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열매를 맺으며 충성스럽게 기다려야 한다.
ㅇ 귀인이 왕위를 가지고 돌아옴 (15)
귀인이 왕이 되려고 먼 나라로 갔을 때에 백성은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에 보내어 자신들은 귀인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악한 자들이 도모하는 일들이란 언제나 악하고 합당하지 못한 것들뿐이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그 마음의 모든 계획들이 악할 수밖에 없다. 백성들이 귀인을 미워한 것과는 달리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ㅇ 상급과 형벌 (16-27)
여기서 문제는 이익을 남긴 므나의 양이 아니라 자세이다.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이나 다섯 므나를 남긴 종이 똑같은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한 므나를 그대로 가져온 종은 책망을 받았다. 그 이유는 교묘한 핑계로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의 명령을 아예 처음부터 무시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여기에서 주의 청지기는 철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요15:16; 고전1:26-31), 주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며(롬12:1-2), 자기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고전4:2)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더 나아가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주인의 엄한 것을 무서워한 한 종은 맡겨 준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다가 주인에게로 도로 가져 왔다. 주인은 그에게 악한 종이라고 책망하면서 한 므나를 빼앗았다 그리고 자신의 왕 됨을 거절한 자들을 끌어다가 죽이라고 했다. 불순종한 자들과 불충성한 자들에게는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이 따름을 기억해야 한다.
< 일요일, 19:28-44절>
[3] 예루살렘 입성 ( 19:28-40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8-40) 최후의 개선, 입성.
28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ㅇ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28-40 )
감람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시기 위해 제자 중 둘을 보내시어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명하셨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목적은 영원한 희생 사역을 성취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죽음을 가져오는 사탄을 멸하시며, 영광과 승리의 왕이 되시기 위함이다. 또한 재림 때 심판의 자격으로 다시 오시기 위해서였다. 예루살렘 입성시 타신 짐승은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였다. 이는 슥9:9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마21:4-5). 이때 사람들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이심을 인정치 않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자기들의 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님을 태웠다. 나귀 새끼를 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많은 무리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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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4) 예루살렘 위한 예수의 눈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 월요일 : 19:45-48 >
(45-46) 재차의 성전 청결.
45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48)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치시다.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ㅇ 예수님의 눈물 (41-44 )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아시고 우셨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신성한 성읍이었다. 이러한 도성이 하나님을 배역하고 선지자를 죽이는 일을 했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까지 죽이려고 하였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뉘우쳐 회개하지 않고 점점 강퍅해져 가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케 될 것을 아시고 탄식하셨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주후 70년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성전이 모두 파괴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파괴를 내다보신 것뿐만 아니라 현재 지도자들 사이에 팽배한 영적 외식주의로 인한 영적, 종교적 황폐를 보시고 애통해 하셨다.
ㅇ 성전을 정화하심 (45-48)
주님은 예루살렘을 장사꾼의 소굴로 더럽힌 것과 순진한 순례자들을 착취한 이유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엄히 책망하시고 내어 쫓으셨다. 주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셔서,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의 장소인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시자마자 먼저 성전을 청결케 하셨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에게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들었다고 화를 내신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은혜로운 곳이 착취와 폭리의 소굴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돌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는 말씀은 회개하라는 말씀이요(막1:4; 고후7:10), 경고의 말씀이요(잠1:23; 고전14:24),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다(민11:26; 벧후1:19). 예수님은 성전 정화 후 그곳에서 날마다 가르치셨다. 장사하는 자들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잃어 가고 타락된 곳을 정화하심으로써 성전을 회복하셨던 것이다.
결론
우리는 본장에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오늘 이 시대의 우리들이 소속해 있는 교회의 모습을 정화해야 하겠다. 교회 안에 바람직스럽지 못한 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하여 하나님의 성전의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켜아 하겠다. 우리의 교회는 진정 기도하는 주님의 집이 되고 있는가? 그리고 성전된 자신 역시 기도하는 주님의 집이 되고 있는가? (고전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