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회개에 관한 세 비유 (회개를 기뻐하심)
(회개를 기뻐하심)
본장에는 잃었던 양의 비유(3-7절), 잃었던 드라크마의 비유(8-10절), 그리고 잃었던 아들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이 세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잃어버린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동시에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이의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내용을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왔다. 그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비난하여 죄인들과 한 통속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1-2절).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세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길 잃은 양의 비유이고(3-7절), 둘째는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이고(8-10절), 셋째는 탕자의 비유이다(11-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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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10)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의 비유.
8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ㅁ 잃은 양의 비유
ㅇ 세리와 죄인들이 주께 나아옴 (1-2)
예수님께서는 경제적으로 부하고 정치적으로 권력을 누리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은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죄인들과 함께하셨다. 죄인이라고 멸시당하는 창기나 세리 그리고 사람들에게 부정하다고 따돌림당하던 문둥병자, 절뚝발이, 소경과 같은 사람들은 경제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멸시를 당하였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고 그들을 회개시키고 그들의 육신의 병을 고치심으로써 그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위로해 주셨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가까이하였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ㅇ 잃어버린 양의 비유 (3-4)
비유의 핵심은 잃어버린 한 영혼 조차도 그냥 버려두지 않고 끝까지 찾으셔서 자신의 품안으로 맞아들이시는 하나님의 사랑(겔34:15,16)을 강조하는데 있다. 물론 여기서 양을 찾아 샅샅이 뒤지는 목자는 예수를 가리키는데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의 양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요6:39).
ㅇ 기뻐하는 목자 (5-7)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선 목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 한 마리 양을 찾았다. 그는 잃었던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 양이 지쳐 있거나 다리가 상해서 걷지 못할 때 목자들은 그 양을 어깨에 메는 것이다. 양을 찾은 목자는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거워했다. 이 비유에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은 하나님 곁에 안전히 거하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잃은 양은 죄악 세상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죄인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마9:13).
ㅇ 열 드라크마의 비유 (8-10)
어떤 여자에게 열 드라크마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잃어 버렸다. 유대 여인에게 있어서 열 드라크마는 결혼 반지 이상의 소중함에 해당하는 것이란 점이다. 유대 사회에선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사랑의 증표로 드라크마 열개를 줄에 꿰어 주는데 여인은 그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였다. 따라서 이것을 잃어버렸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찾았다는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은 의미를 지니는데 이때 그 여인의 기쁨은 억제할 수 없어 친구와 이웃들을 초대하여 기쁨을 나눴다. 이상과 같은 비유에서도 우리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 수 있는데 이 같은 기쁨은 비단 하나님에게만 국한되는것이 아니라 첫째는, 회개한 죄인 자신과 둘째는, 우리 성도(행16:34)은 물론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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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2) 방탕한 자식과 그 형의 비유.
11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ㅇ 탕자의 비유 (11-32)
본 비유는두 부분으로이루어져 있어, 첫째 부분(11-24절)에선 앞의 두 비유처럼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죄인을 다시 찾은데 대한 기쁨을 말하고 있으나, 둘째 부분(25-32절)에선 맏아들의 냉혹한 태도를 다룸으로써 또 다른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즉 여기서 둘째 아들은 세리나 죄인들(1절), 더 나아가 이방인과 같이 뒤늦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지들을 가리킨다. 또한 맏아들은 이 같은 사죄의 은총에 대하여 못마땅히 여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2절)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전유대인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둘째 아들은 영적, 도덕적으로 소생한데 반해 맏아들은 오히려 퇴보, 타락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께선 여전한 사랑으로 양자를 똑같이 사랑하신다.
ㅇ 타국에서 비참한 모습의 탕자 (12-19)
탕자는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줄 것을 요구했다(12절). 그리하여 그것을 가지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던 탕자는 결국에는 돼지 먹이인 쥐엄 열매 조차도 먹기 힘든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13-16절). 이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잘살아 보겠다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최소한의 자유도 누리지 못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 인간일지라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회개한 죄인을 기쁘게 받아 주신다.
ㅇ 집으로 돌아옴, 받아들여짐, 보상함, 기대함, 다시 새로와짐(20-24절)
ㅇ 기뻐하는 아버지 (22-24)
ㅇ 집을 향함, 돌아옴(20a)
집을 떠난 아들은 스스로 돌이켜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기에 감당하지 못할 죄책감에 사로잡혔다(17-19절). 아들은 일어나아버지께로 발길을돌렸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목격하고 거리가 먼데도 달려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고,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주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이웃 사람들과 함께 돌아온 아들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회개를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
ㅇ 형의 불만 (28-32)
여기서 탕자의 형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탕자의 형은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항상 아버지 늘 옆에서 보필해 왔던 자신에게는 작은 잔치라도 베풀어 준 적이 없었는데, 둘째 아들은 집을 뛰쳐나갔다가 돌아온 것뿐인데 큰 잔치를 베풀어주는 것에 대하여 분노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을 알지 못하고 탕자의 진정한 회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탕자의 형은 바로 예수를 비난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죄인의 진정한 회개의 가치에 대하여 너무도 몰랐던 것이다.
결론
우리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의 회개를 얼마나 기뻐하시는 가를 알 수 있다. 멀리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품에 돌아온 성도들은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런 자들인가!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가장 기쁘게 받아 주실것이다. 이에 성도들은 복음전도의 의무를 다해야 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