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2장] 분을 발하는 엘리후
[욥기 32장] 분을 발하는 엘리후
본장에서부터 욥37장까지는 엘리후의 중재적인 변론이다. 엘리후는 앞서언급되어진 욥의 세 친구와는 별도의 사람이다. 그는 지금까지 욥과 그의세 친구들의 변론을 모두 들었다.
그는 욥의 항변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주지 못한 채 욥을 정죄하기에만 급급했던 친구들을 나무람과 동시에 욥이 악한 삶을 살았다고 정죄할 수는없지만 자신의 의를 지나치게 주장한다고 보고 중재자로 나섰다.
[1] 엘리후의 출현 ( 3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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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2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3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4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참고 있다가
5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 엘리후의 출현
ㄱ) 친구들의 말이 그침 ( 32:1 )
욥을 위로하러 왔던 세 친구들은 욥과의 대화를 통해 그에게 고난이 찾아온 것은 욥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욥을정죄했던 세 사람은 욥이 친구들의 말을 묵살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의로움을 변호하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욥의 고집에도원인이 있지만 실제로 자신들의 논증보다 욥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ㄴ) 노를 발하는 엘리후 ( 32:2 )
욥의 친구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자,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노를 발했다. 엘리후가 욥을 향하여 노를 발한 것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었다. 또 이어서 엘리후는 세 친구들에게도 노를 발했다. 그것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욥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노를 발한 엘리후는 그들을 정죄함과 동시에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전제를 은연중에 내세웠다. 사람의 행위에 대한 판단과 정죄는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 권한이다.
ㄷ) 참고 있다가 나온 분노 ( 32:4-5 )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므로 욥에게 말하기를참고 있다가 그들이 말하기를 그치자 입을 열었다. 이는 연장자가 말할 때연소자가 겸손히 듣는 사회적인 풍습 때문이었다. 성도는 바르고 정당한말이라도 먼저 예의를 지키며 말해야 한다. 예의에 벗어난 말은 진리라도남에게 유익을 줄 수 없다. 엘리후는 세 사람과 욥의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나 예절을 지키기 위해 인내했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후의 이러한 마음은 그의 발언 중에 잘 나타나 있다(욥32:8-19).
[2] 엘리후의 인품 ( 32: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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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엘리후의 말]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7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주시나니
9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11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12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없도다
13 당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으나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14 그가 내게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이론으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 욥을 꺾겠다는 엘리후
ㄱ) 총명은 하나님이 주심 ( 32:1-9 )
엘리후의 예의 있는 태도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신중함에서 잘 나타난다. 엘리후는 젊은 자가 연로하신 분들 앞에서 먼저 지도자적인 의견을 진술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였다. 그는 그러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연소자라도 연로자 대신으로 옳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ㄴ) 욥을 꺾지 못한 친구들 (32:10-14)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그들 가운데 욥을 꺾을 만한 자가 없었다고 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 중에 있을 때 와서 욥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말만 했다. 또한 욥을 이해하려는 사랑보다는 욥을 판단하고 누르는 강압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이에 대해 욥은 도저히 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3] 엘리후의 개입 이유 ( 32:1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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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들이 놀라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음이었더라
16 당신들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기다리랴
17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18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19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20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21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나를 데려가시리로다.
ㄱ) 확신하는 엘리후 ( 32:15-18 )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에게 욥을 당할 만한 자가 없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욥을 꺾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욥과 그 친구들의 변론 내용을 모두 듣고 나중에서야 변론에 나섰다. 엘리후가 변론하려고 했던 시기에 어떤 친구도 그의 말을 막지 않았다. 그는 욥에게 올바른 해답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참고있을 수 없을 만큼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하다고 했다.
>> 변론의 공정성
ㄴ) 시원할 것이라 (32:19-20)
말을 하고 싶을 때에 계속 참게 되면 말이 가득하여 쌓이게 되는데 그것은마치 봉한 포도주가 발효되어 가죽 부대를 부풀리는 상태와 유사하다. 엘리후는 말을 참다가 결국 말을 꺼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말을 발하여야시원할 것이라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을 참다가 한다고 해서 시원스러운 변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말해 주기를기다리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해야 한다
ㄷ) 편견이 없음 ( 32:21-22 )
엘리후는 변론에 즈음하여 자신은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다. 즉 자신은 편견이 없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욥은 만일 자신이 아첨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취하여 가실 것이라고 했다(22절). 하나님께서는 아첨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곧 여호와는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는 분이다(시12:3). 아첨은 몰락을 가져오게 되고(잠26:28), 오해를 불러일으키며(잠29:5), 죽음을 초래하는(행12:21-23) 파멸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말을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을 의식하므로 절제된 언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욥과 그의 세 친구들간의 논쟁이 일단락되고 엘리후라는 새로운인물이 본장부터 등장하였다. 엘리후의 등장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달라지게 되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계획을인정하고 온전히 그분만 신뢰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