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7장] 형식적인 금식과 참된 금식. BC518년경. (회개치 않는 금식의 가증함)
(회개치 않는 금식의 가증함)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가 진행 중이던 때에 벧엘 사람들이 사람을 보내어 오월에 행하던 금식을 행하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금식이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아니고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으므로 중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다.
선지자는 금식에 관해 포로 된 자들의 자녀들의 질문을 받는다. 그들은 포로 생활 70년 동안 종교적으로 지켜 왔던 엄격한 금식을 계속할 것인가에 관해서 묻는다(1-3절). 이 질문에 스가랴 선지자는 금식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그들을 날카롭게 비난하고(4-7절), 그들의 생활을 개혁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금식이 최선의 길이 될 것이며, 이 금식을 지켰던 그들에게 심판을 가져왔던 저 죄악들을 주의하라고 권면한다(8-14절).
[1] 금식에 관한 질문 ( 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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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금식에 관한 백성의 물음과 반성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답.
1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2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7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ㅁ 외식적인 종교 행위에 대한 책망
ㅇ 벧엘 사람의 금식에 대한 질문 (1-3)
다리오 왕 사 년 구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는데 그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 생활에 대하여 종교 지도자들에게 물어 바른길을 가고자 했다. 벨엘 사람이 질문한 내용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중에 울며 근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유다의 멸망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된 날을 상기하여 매년 오월마다 행하던 관습에 대한 것이었는데,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있으므로 그러한 행사를 계속하여야 하느냐 그만 두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물은 것이다.
ㅇ 참된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 (4-5)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은 유다 백성이 포로 70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으나 그 금식이 하나님을 인한 것이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는 그들의 금식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욕구에서 말미암은 것이었으며, 단지 포로 생활하는 것에 대해서만 비애를 느끼며 금식을 행하였던 것이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근본적인 회개 없는 형식만이 있는 종교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이 결여된 외식적인 종교 생활은 허울이요, 자기 기만이며, 이기심의 발로임을 모든 성도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ㅇ 자신을 위해 먹고 마신 죄악 (6)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먹고 마심이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먹고 마심임을 책망하셨다. 자신들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자들의 금식 또한 자신들을 위한 금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울은 성도가 먹으나 마시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위하고 살고 죽어야 함을 교훈하였다(롬14:7-9). 이러한 성도에게만이 금식을 비롯한 모든 종교 의식이 의미가 있다.
ㅁ 말씀을 순종치 않은 이스라엘
ㅇ 말씀을 청종할 때의 평화 (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누렸던 복을 상기시키심으로써 그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았음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겨 그 말씀을 청종하고 지켜 행할 때에는 그들의 땅에 풍년이 들었고 주변 국가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렸다. 또한 예루살렘 성읍이 흥왕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청종할 때에 내리셨던 복을 말씀하심은 그들이 다시 그러한 복된 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임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다.
[2] 지난 죄악들을 주의하도록 권고함 ( 7: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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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도덕적 생활을 보이고, 선조들의 불순종과 그 형벌을 회상, 반성케 하다.
8 [사로잡혀 가는 까닭]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14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ㅇ 순종하여야 할 하나님의 명령 (8-9)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은 진실한 재판을 행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었으므로 공의로운 재판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세상에 실현해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명령은 공의와 함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공의와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존재들로서 특별한 배려의 대상으로 언급된다(출 22:21,22). 채권자는 이들의 옷을 저당물로 잡지 말아야 했고, 추수 때 미처 거두지 못한 곡식은 이들을 위해 남겨 두어야 했다(신 24:17-22). 또한 이들은 매 3년마다 특별한 십일조를 나누어 받았다. 이같은 약자들을 학대하는 것은 잔인하고 불의한 일로 간주된다(시 94:6, 7). 결과적으로 불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6:9).
ㅇ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이스라엘 (11-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았고 마음을 금강석 같게 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치 않는 이스라엘의 완악한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의 신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이 증거하였으므로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큰 노를 불러일으키고,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로 이방의 포로가 되게 했다.
ㅁ 불순종으로 인한 징벌
ㅇ 응답지 않으시고 열국으로 심판하심 (13-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징벌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시고 간구에 응답지 아니하심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듣지 아니하였듯이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으로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침을 당하도록 하셨다고 본문은 증거하고 있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그 땅에 임했을 때 유다 백성이 멸망당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을 비롯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유다 땅은 황무하여져서 사람이 거하지도 못하고 왕래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가나안의 황무함은 곧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러나 중심으로 자기의 죄를 통회하는 자는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시다(시34:18).
결론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순종이 없이 행하는 종교 의식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죄악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헌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려야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만 있고 중심이 없는 신자의 생활을 원치 않으신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신자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실제적 믿음의 순종과 사랑의 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