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예수와 세례요한 (세례 요한에 대한 배척)
(세례 요한에 대한 배척)
본장은 세 개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내용은 세례 요한에 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둘째 내용은 예수께서 큰 권능을 많이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고 믿지 않은 세상에 대해 책망하심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내용은 복음을 영접할 만한 자들에 대한 복음으로의 초대 말씀을 언급하고 있다.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메시야이신지 아닌지를 질문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임을 분명하게 선포한다(1-6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례 요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시고 인정해 주신다(7-19절). 그 후 예수께서는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이 회개치 않는 사실에 대하여 탄식하신다. 그리고 예수께서 주시는 짐과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선언 하셨다(20-30절).
[1] 세례 요한의 질문과 그리스도의 대답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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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의 전도.
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6) 세례 요한의 옥중에서의 질문과 주님의 대답.
2 [세례 요한]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ㅇ 세례요한의 메시야 확신 (1-5)
세례 요한이 예수의 메시야에 대하여 다시 한번 확인한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으로서의 의문 이상의 구속사적 의의를 갖는 사건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메시야 되심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았으나 구약적 메시야관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메시야 사역의 참 과정과 본질 그리고 범위에 관하여 혼동을 일으켰다(눅 7:18-35). 따라서 예수는 세례 요한의 ‘메시야 시대 도래를 예비하는 자’로서의 의의와 그 한계를 명시하고 예수님은 메시야 되심을 구체적 행적들로써 입증하셨다(5절).
ㅇ 복 있는 자 (6)
복 있는 자는 예수님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자이다. 즉, 복 있는 사람이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천국은 세례 요한 이후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메시야임을 세례요한과 같이 믿고 확증한 자들이며, 그들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을 택한 사람들로서(눅13:24), 이들이 바로 복 있는 자들이다.
[2] 세례 요한에 대한 그리스도의 증거 ( 11: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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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그리스도의 요한에 대한 평.
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ㅇ 세례 요한과 예수 (7-11)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 선지자의 마침표라 할 수 있으며 그는 구약에서 메시야관을 갖고 있었던 바 예수의 여러 가르치심을 듣고 혼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예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신하였으나(3:11-14;요 1:19-36; 3:27-30) 메시야 구원의 참 과정과 본질 그리고 범위에 대해서는 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께 꼭 물어 보아야 했었을 것이다. 한편 요한의 이 질문에 응답하신 직후 주님은 직접 세례 요한의 선지자적 사역에 대한 인정(7-10절), 세례 요한에 의한 구약의 종결(11-14절)을 말씀하심으로써 세례 요한으로 마감되는 구약적 구원관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 구원관의 점진성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신약은 구약 속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 속에 열려져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ㅇ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12,13)
예수께서는 요한이 그의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돕는 것을 아시고 요한과 같이 천국을 침노하려고 하는 자, 곧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마6:33)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천국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그 믿음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일하는 자 곧 이방인, 세리, 창녀, 각종 범죄자들에게 까지 주어진다.
[3] 회개치 아니하는 고을들에 대한 경고 ( 11: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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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 이 세상에 대한 평.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ㅇ 복음에 반응없는 세대의 패역함 (16-19)
예수께서는 요한이 천국 복음을 외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전파하였으나 사람들이 그 외침과 전파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마22:5)을 아시고 세상에 속한 자들의 완악함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천국 잔치에 초대하여도 응하지 않고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여도 무덤덤해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이 진리는 지혜를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데, 예수님은 그의 인격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지혜’(고전1:30)이다.
[4] 회개치 않는 성읍들에 대한 책망 ( 11:20-24 )
(20-24) 회개 없는 성읍에 대한 질책.
20 [회개하지 아니하는 도시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ㅁ 복음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세대
ㅇ 회개치 않는 자들의 운명 (20-24)
예수께서 후기 유대 사역 과정에서 70인 제자를 파송하시며 주신 말씀이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이 세 성읍들은 예수의 여러 이적들과 말씀들을 목격하고도 자만과 무관심에 젖어 대다수 거민들이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로 예수님은 그 성읍은 음부에까지 낮아지는 주님의 책망과 선고를 받았다. 이렇게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도, 믿지도 아니한 자들은 그 상태로 살다가 그냥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하게 된다(계21:8). 따라서 그들에게 닥칠 필연적이고도 철저한 심판이 교만과 패역함의 대명사격으로 여겨졌던 시돈과 두로(렘 25:22)에 비교되어 언급되고 있다.
[5] 그리스도의 은혜의 초청 ( 11:2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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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7) 하나님 아버지의 감사.
25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에 대해 초청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ㅁ 메시야의 초대 (25-30 )
앞서 16-24절까지는 복음을 배척한 자에 대한 말씀인 반면 이 부분은 복음을 받아들일 자들에 대한 초청과 권유의 말씀을 담고 있다.
ㅇ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부르심 (25-27)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이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하자 그들을 정죄하신 뒤 예수께서는 다시 자신을 영접할 만한 자들을 초청하신다. 그 초청은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하나님을 영접하고 의뢰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부모를 본능적으로 따르며 순전하게 자기 부모를 의지한다. 이처럼 하나님을 따르고 의뢰하는 자들을 주께서 초청하신 것이다.
ㅇ 은혜로운 계시 (28-30 )
본문은 초청과 권유의 말씀이다. 복음은 세상의 부귀나 권세로써 소유할 수도 없으며, 오직 어린아이와 같이 겸허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수납할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위로부터의 계시요 은혜라 하겠다. 주님은 교만한 자들이 아닌 자기 죄의 무게를 인식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부르셨다. 사람은 자기의 고통과 유한함과 연약함을 느낄 때에야 하나님을 구하게 된다.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이 완결된 것이 아니다. 참으로 예수를 믿고 배움으로 그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행한다는 것까지를 포함한다(요14:21).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입으로만 믿는 자가 아니라 마음과 육신을 다해 예수를 믿고 그 믿음대로 행하기를 바라고 계신다(딤후3:14).
결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영접하면 영생에 이르고 아니하면 영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는 분이시다. 인간은 한 가지 이상의 짐과 멍에를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와 짐은 인간들에게 최대의 자유와 삶의 가치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고 짐을 짊어져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주님의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