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가나 혼인잔치의 첫번째 이적
본장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표적과 행위를 통하여 직접 자기 자신을 증거하신 것이 특징이다. 예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과 성전 청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좇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의지하지 아니하시고 능력으로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셨던 것이다. 특별히 공관복음에서도 수많은 이적들이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의 권위를 뒷받침해 주는 권능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표적에 대한 반응으로 제자들의 반응과 유대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서로 상반되었다. 이와 같이 공생애 초기부터 예 수의 신성에 도전하는 무리들이 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본장은 가나에서의 첫 표적으로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1-12절)과 하늘의 권세 있는 교사로서 성전을 청결케 함(13-25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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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의 주님의 이적.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ㅁ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 (1-11 )
첫째날 (요1:19-28)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겸손한 요한)
둘째날 (요1:29, 35) 어린양을 증거 하던 날
사흘째(요2:1) 거룩한 표적의 날
마리아가 믿음으로 간청할 때 예수님은 결코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3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9절). 예수님에 의해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듯이,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무미 건조한 삶이 기쁨과 희망에 불타게 되며, 무한한 질적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후5:17).
ㅁ 가나 혼인 잔치에서의 표적
ㅇ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 잔치 (1-3)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기사를 요한은 예수의 첫번째 표적으로 증거하였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3절), 예수와 그 제자들이 혼인 잔치에 초대받아 참석하였을 때 그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손님들을 초대해 놓고 음식이 떨어짐은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때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 가서 그 사실을 고하였다. 마리아는 예수의 출생 전부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께서 그 문제를 능히 해결해 주시리라 믿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때로는 막다른 상태(요11:3)에서 채우신다. 마리아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믿음으로 간청할 때 예수님은 결코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3절). 우리는 인생의 곤궁한 처지를 깊이 헤아리시는 분(사 61:1-3)으로서, 주님의 긍휼과 잔치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ㅇ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 (4-8)
‘내 때가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절), 여기서의 ‘때’(요7:6, 30 / 8:20 / 12:23,27/ 13:1/ 17:1)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게 되시는 결정적 ‘순간’을 가리킨다(17:1). 그런데 그 영광의 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및 승천을 포함한다(12:23-28).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야말로 영광스러운 메시야 사역의 최고 정점임을 보여 준다. 한편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 어머니도 기적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 예수에 대해 알고 있었던 어머니(눅2:51)는 예수께서 하라는 대로 행할 것을 지시했다. 하인들이 예수의 명을 따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을 때 그 물은 맛있는 포도주로 변하였다. 예수께서는 창조주로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이적의 역사를 행하심으로써 잔칫집에 닥친 위기를 해결해 주셨던 것이다. 이러한 이적은 예수의 말씀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하인들의 행위를 통해 나타났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ㅇ 표적으로 나타난 영광 (9-11)
예수께서 말씀으로 만드신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 처음 것보다 나중 것이 더 좋다고 칭찬했다. 예수께서 결례의 항아리에 채워진 물을 맛있는 포도주로 만드신 것이다.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께서 구속 사역으로 유대인의 율법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구속사적 전환점을 마련하신 것이다. 율법 시대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한 은혜의 시대는 물과 포도주를 비교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시대는 율법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참고 : 7가지 표적들>
물이 포도주로 변화시킴(2:1-11)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4:46-54)
중풍병자를 고치심(5:1-16)
무리를 먹이심(6:1-13)
물위를 걸으심(6:16-21)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9:1-7)
나사로를 살리심(1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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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성전 청결.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13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ㅁ 성전 정화 사건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유월절을 세 번 맞으셨다. 본문과 같은 정화 사건이 2회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그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 성전에 대해 각별한 관심으로 그곳의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에게 의분을 발하셨다. 그분의 첫 번째 성전 숙정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더럽히는 악행은 근절되지 않은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3:36까지는 초기 유대 사역에 관한 기록으로 타 복음서에 비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은 신앙이라는 미명 아래 행하여지는 착취와 폭리 등의 그릇된 종교 상업주의를 척결하며(마21:13), 성전 예배의 경건성을 회복, 유지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성전 뜰에서 들려지는 물가에 대한 이야기나, 돈에 대한 불평, 물건에 대한 언쟁, 흥정하는 소리 등은 성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경외심을 소멸시켰던 것이다(16절). 이렇게 성전 장터로 사용되던 곳은 이방인의 뜰로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성전에서 이방인이 기도할 수 있는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하나님을 찾는 자의 길을 막는 악행을 저질렀다.
ㅇ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 (12-14)
예수께서 유월절이 가까워 오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오는 사람들은 긴 여행을 하는 동안 짐승을 흠도 티도 없이 보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제물로 쓰일 짐승들을 판매하는 자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거룩해야할 성전에서 그들은 짐승 값을 비싸게 받아 부당 이득을 취는 장사집으로 바꿈으로써, 예수를 격노케 했다. 돈 바꾸는 자들은 로마 화폐로 헌금을 드릴 수 없었기에 로마 화폐를 유다 화폐로 환전해 주는 자들이었다. 그들도 제사 드리는 자들에게 환전해 주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함으로써 성전을 더럽혔던 것이다.
ㅇ 분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15-16)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짐승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의 악행에 대하여 분노를 발하셨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짐승들을 성전에서 다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셨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셨다. 예수의 이러한 행위는 성전의 주인으로서 성전의 거룩성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에 대한 공의로운 분노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죄악에 대해서는 맹렬한 분을 발하시어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ㅇ 성전이신 예수 (17-22)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자 유다인들이 예수의 권세에 대해 의문을 품고 표적을 보일 것을 요구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성전을 헐면 삼 일 만에 세우시겠다고 대답하셨다. 예수의 말씀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말이었다. 사십오 년 동안 지은 성전을 삼 일 만에 세우겠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키신 것이다. 성전은 임마누엘의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예수는 그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인간 세상에 오시어 함께 거하셨으므로 성전의 실체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을 헐면 삼 일 만에 세우시겠다는 말씀은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예언이었다. 예수의 제자들도 당시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요한은 증거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성도의 몸은 주의 영이 거하시는 재건된 성전이 되었다(고전3:16; 엡2:20-22). 따라서 예수의 죽음으로 인하여 세워질 새 성전은 새로운 종말론적 성전이며, 예수의 보혈로 구속될 종말론적 하나님의 백성이고, 궁극적으로 가시화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하나님의 나라 성전의 예표라 하겠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우리의 예배가 새 성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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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수는 사람의 마음속을 아신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ㅁ 인간을 의탁하지 아니하신 그리스도
ㅇ 표적을 보고 믿는 자들 (23)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 이야기의 배경이 되며, 상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예수의 메시야적 권능이 그 표적에 담긴 참뜻을 깨닫지 못하는 무리들의 열광적인 흥분과 환호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수에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시면서 표적을 행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표적 행하심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할 때 눈으로 봄을 인하여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표적을 보는 것이 그들에게 참 믿음을 주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예수의 표적을 보고 좇던 많은 자들이 예수께서 잡히셔서 고난받으실 때 다 예수를 배반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ㅇ 친히 사람을 아시는 예수 (24-25)
요한은 예수께서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을 의탁하지 않고 사람에 의해 아무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다고 증거했다. 인간은 연약하여서 언제나 변할 수 있으므로, 예수께서는 인간을 의지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성령을 받아 변화된 자만이 하나님의 복음의 도구로써 사용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예배는 사랑이 없이 형식적으로 반복되는 예배나 종교 의식을 하나님은 싫어하시며,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거룩한 열심이 있어야 하며(17절),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다(24절). 예수께서는 순수하고 참된 믿음을 원하셨기 때문에, 표적을 보고 따르는 무리들을 오히려 경계하셨다.
결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표적과 성전 청결 사건에서 나타난 예수의 표적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의탁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능력을 행하심으로써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셨다. 성도가 주의 복음을 증거함에 있어서 인간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