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 죄사하는 권세.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사랑)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단지 인간의 육체적 질병을 고쳐 주시기 위함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하시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또한 본장은 그러한 사실과 함께 죄인이야말로 예수의 사랑을 받을 자라는 것과 구원에 이를 자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점차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본장 내용을 단락별로 살펴 보면 예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본 동네로 오셨다(1절). 사람들이 침상에 중풍병자를 메고 오는 것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2-8절). 예수께서 마태라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의원은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다(9-13절).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의 문제로 예수께 질문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신다(14-17절). 또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신다(18-26절). 그 후 예수께서는 두 소경을 고치시고, 벙어리를 고치시고,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27-38절).
[1] 중풍병자를 고치심 ( 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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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중풍병자의 죄 사하심과 병을 고치심.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ㅁ 예수의 권세
ㅇ 중풍병자의 치유와 죄사함의 권세 (1-7 )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작은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으로 치료하셨다. 주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육체적 질병은 물론 영혼의 문제까지 해결해 주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또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심으로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내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죄인을 회개케 하고 죄를 사하는 권세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메시야 사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육간의 구원을 이루시는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보여주셨다.
[2] 마태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교제하심 ( 9: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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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 마태의 부르심과, 식사 중에 바리새인과의 대화
9 [마태를 부르시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ㅇ 예수 사역에 대한 구원의 대상 (9-13 )
예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각종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구원받은 병자와 죄인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감사 찬양의 일이었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입장에서는 질시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곧 사람마다 예수와 그의 사역에 대하여 각자의 이해 관계나 가치관 또는 선입관에 의하여 달리 평가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 받고자 하는 자들은 (1) 순진 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으로(18:3) (2) 죄를 아파하고 무서워하는 죄인의 마음으로(11:28) (3) 세상의 즐거움 보다 천국의 영원한 즐거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골 3:1)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3] 금식에 관한 논쟁 ( 9: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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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 금식론과, 옷과 가죽 부대의 비유.
14 [금식 논쟁]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ㅇ 바른 금식의 교훈 (14-17 )
금식하는 이날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요구되었던 금식일, 즉 속죄일, 부림절 전날, 그리고 예루살렘 함락을 기념하는 아빕월 중의 하루였던 것으로 보인다(에 4:1-17). 한편 본절에 의하면 금식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의견이 일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랑의 비유 –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을 빼앗길 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날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금식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생베 조각의 비유 – 생베 조각은 예수님의 복음을 의미하며 ‘낡은 옷’은 유대교의 교리를 가리킨다.
새 포도주의 비유 –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교의 낡은 전통에 얽매이지도 않고 형식을 추구하지도 않음을 가리킨다.
금식의 비유에서는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금식에 반대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위선과 형식으로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4] 한 관원의 딸과 혈루병 걸린 여인을 고치심 ( 9:1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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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 12년간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을 고치심과, 회당장의 딸을 살리심.
18 [한 관리의 딸과 예수의 옷을 만진 여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ㅇ 자비로우신 치유자 (18-26 )
야이로의 죽은 딸(막 5:21-43;눅 8:40-56)과 혈루증 여인을 고치신 이야기이다. 혈루증 여인의 믿음은 아주 미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믿음을 귀히 여기시면서 육체적 질병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영적 질고와 억압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하셨다. 구원 체험은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으며, 우리의 믿음은 주님에 대한 순종의 정도에 달려 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영적으로 사망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참혹한 형벌이다. 이 형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히9:27).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처럼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망의 올무에 걸려 있던 한 소녀를 사망으로부터 다시 살려 주심으로 예수는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하실 구주라는 사실을 나타내 주신다(마4:16; 롬8:2).
[5] 두 맹인들을 고치심 ( 9:2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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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1) 두 소경을 고치심.
27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시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34)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심.
32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다]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ㅇ 맹인의 믿음 ( 9:27-31 )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 두 소경이 따라오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구했다. 두 맹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는 예수의 질문에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이들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임을 고백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지만 이를 개의치 않고 예수께 나왔으며, 예수의 병 고치는 권능을 믿었다. 이로써 결국 자신들의 믿음대로 병고침을 받았고, 자신들이 체험한 예수의 이적을 널리 전파하게 되었다. 그들은 육신의 눈이 먼 자들이었지 영혼까지 눈이 멀지는 않았다(13:14,15).
ㅇ 너희 믿음대로 되라 ( 9:29,30 )
그들의 눈이 밝아진 것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믿고 바라는 것을 모두 다 성취시킬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도 언제나 이 두 맹인같은 확신의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편 이 맹인들은 눈 뜬 사람보다도 예수에 대하여 직접 알고 배울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강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이 보지 못하는 맹인됨을 메시아께 내보였을 때 그 진정성과 순수성이 아울러 구주의 능력에 확신이 수반되어졌다(히 11:1). 이는 믿음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6] 그리스도의 모든 활동에 대한 요약 ( 9:3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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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ㅇ 일꾼을 위해 기도를 당부하심 (35-38 )
예수의 전도 사역의 열의와 점점 더 확장되어가는 사역에 동참할 자가 요구됨을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이 가슴 뭉클하게 전해져 오는 구절이다. 예수는 무리에게 아무런 책임과 빚과 의무가 없으시다. 그러나 오직 사랑 때문에 예수는 제 젖먹이를 그윽히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으로 능동적 사랑을 무한히 부어 주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 (18:12-14;시 23:1-6)을 생각하셨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구원의 준비를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주인 곧 하나님께 청하라고 하셨다. 이는 또한 오늘날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이요 요청이다.
결론
죄와 사망과 죄의 올무를 물리치시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실 참 하나님이시요 구주이시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과 함께 은혜의 시대가 왔다. 이제 우리들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분은 죄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바로 섬기고 그를 사랑하며 그 사랑을 따라 그의 말씀을 삶 속에서 이루어 가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