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판단에 대한 가르침.

[마태복음 7장] 판단에 대한 가르침.

 

 

 

5장에서 시작된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이다. 예수님은 본장에서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자들은 말씀대로 삶으로써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교훈한다. 구체적으로 본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규범의 내용들은 겸손에 관한 규범, 신중한 것에 관한 규범, 남을 대접하는 규범, 성도가 피해야 할 것들 및 성도가 적극적으로 걸어야 할 길들이다.

예수께서는 비판하지 말 것을 명하셨고(1-5절), 거룩한 것을 그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 주지 말 것을 명하셨고(6절), 구하면 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르치셨다(7-12절). 산상수훈의 결론부에 이르러서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13-14 절)과 주의 뜻을 행하는 것과 열매의 중요성(15-23절),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만 할 당위성(24-27절)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자 온 무리들이 예수의 신선한 가르침과 크신 권세를 놀랍게 여겼다(28-29절).

 

[1] 비판과 책망에 관한 규칙들 ( 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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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천국 시민의 비판에관한 문제.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부정해진 자에의 주의.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ㅁ 바른 삶의 자세

ㅇ 비판의 문제 (1-2)

사람이 살다 보면 타인을 정죄하고 비난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예수님은 비판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1절). 이는 불의를 보고 지적하는 것조차 금한 것이 아니라 다만 타인의 허물에 대해 자신이 재판관인 양 정죄하지 말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 이래 부패한 인간은 모두 허물을 지니고 있으며, 언제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만이 모든 인간을 심판하실 분이기 때문이다(약 4:11,12). 따라서 남의 허물을 보았을 때 자신을 돌아보는이 마땅한 자세이다.

ㅇ 겸손할 것 (3-5)

천국 백성이 지키며 살아가야 할 삶의 규범의 하나는 자신의 죄악을 깨달아 타인의 죄악에 대해 관용하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는 생각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의 죄악에 격분하면서 그 죄악을 용서 못할 것인 양 정죄한다. 우리는 남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ㅇ 신중할 것 (6)

천국 백성이 지키며 살아가야 할 규범 중 다른 하나는 거룩한 것을 지키지 못할 자에게 거룩한 것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빌3:2; 벧후2:22). 실제로 이 세상에는 거룩한 말씀을 더러운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 성도는 그러한 자들을 가려 복음이 오용되는 것을 막아야 할것이다.

 

[2] 기도에 대한 격려 ( 7: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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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기도에 관한 권면과 약속.

7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ㅇ 유일한 기도와 기도의 방법과 태도 (7-11)

이 험난하고 부족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충만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구하는 유일한 수단은 기도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삶을 살 것을 명하셨다(시116:2). 올바른 기도란 마음으로 구하고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의 도우심과 응답을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응답받는 기도의 전제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이다. 자신의 정욕과 사리 사욕을 위해 기도하는 자는 결코 응답받을 수 없다. 한편 예수님은 여기서 아비와 자식의 관계를 예로 들어 친근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즉 예수께서는 ‘인간도 자기 자식에 대하여선 가장 좋은 것으로 주기를 원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하여서랴’라고 반문하고 있다.

 

[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7: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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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격언적인 황금률.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3-14) 천국 시민의 길-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

13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ㅇ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 (12)

대강령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다. 남에게 베푸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생활 윤리이고 규범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으로부터 받아야 할 권리만을 생각하고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먼저 타인에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라고 가르치셨다(눅6:31; 롬12:17).

ㅁ 하늘나라 백성이 취해야 할 길

ㅇ 좁은 문 좁은 길 (13-14)

대다수의 사람들의 길이란 육체를 따라 가는 물질과 분냄과 쾌락 따위를 추구하는 길이다. 그 길은 가기도 쉽고 대다수가 가는 길이기 때문에 넓은 길이라고 한다. 반면에 거룩과 사랑과 고난의 길은 영을 따라 가는 길이다. 이 길은 괴롭고 적은 사람들만이 가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고 한다. 주님은 이 길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 좁은 길을 가기를 원하신다(눅13:24). 생명의 문이 좁고 협착하다는 것(14절)은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 할 인생 행로가 얼마나 고되고 험난한 것인지를 말해 준다(딤후3:12). 그러나 이러한 좁은 문을 통과하면 그 앞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영광스런 나라의 상급이 있다.

 

[4] 거짓 선지자에 대한 주의 ( 7:1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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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 거짓 선지자의 경계-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

15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ㅇ 거짓 선지자 (15-20 )

거짓 선지자의 두 가지 속성(위장과 탐욕)을 밝힘과 아울러 영적 분별력하에서는 그들의 악한 행실이 드러나기 마련임을 지적한 말씀이다. 나무의 존재 의의는 그 열매이다. 나무는 자라서 결실을 맺기에는 오랜 인내가 요구된다. 나무 마다그 열매의 종류와 질이 정해져 있다. 열매를 보고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이는 끊임없는 성실과 인내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해 준다.

 

[5] 천국애 들어갈 수 없는자와 지혜로운 사람 ( 7:2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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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3)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27) 듣고서 행하는 자와 행치 않는 자-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29) 주님의 설교의 권위와 청중의 감동

28 [무리들이 가르치심에 놀라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ㅇ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 (21-23 )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신앙의 필요 조건에 불과하다면 뜻대로 행하는 자는 신앙 성장의 충분 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신앙은 예수에 대한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순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본절은 다른 모든 불신자들과 함께 예수를 지식으로만 알고 영육으로 순종하지 않는 반쪽 신자도 정죄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믿음으로 믿은 자에 대해 다 이루어 주신 구원의 은혜로 안식을 얻었다면 하늘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눅15:6,9,24). 이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순종하여 살아가기를 원하신다(합2:4; 롬1:17)

ㅇ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길 (24-27)

유한한 피조물을 의지하는 삶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은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전10:4).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언젠가는 멸망할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영원 무궁하신 하나님을 의뢰할 것을 명하셨다. 신앙 생활을 건축에 비유한 것은 고전 3:10-15절에  건축 재료의 선택 문제, 즉 건축의 성실성 문제를 중심한 것이다. 우리는 건축 터전의 선택에도 현명해야 하며 재료와 건축 방법에 있어서도 역시 성실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본문은 인생을 건축에 비유하여 궁극적 기초이자 터전으로서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을 실제 행실의 열매들로써 입증해 보일 것을 가르치신것이다(눅 6:46-49).

ㅇ 예수님의 가르침의 권위에 놀람 (28,29)

서기관들과 예수님의 교훈과의 차이는 반사체와 발광체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 서기관들은 인본주의적 말씀이 가미된것이라면 예수님은 신본주의적 관점에서 완전한 권세의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의뢰하여 반사체 역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결론

예수께서는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빼낸 후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고 하셨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다. 누가 누구를 향하여 비판하고 비난할 만한 자격이 없다.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인된 나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직시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는 겸손한 태도를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의롭고 지혜롭게 사는 삶이다. 의의 삶이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손히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이며, 지혜로운 삶이란 거짓과 불의를 피하면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거룩을 추구하는 삶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의롭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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