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장] 포도원의 품꾼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예언)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예언)
예수께서는 떠나실 때가 가까워 오자 천국에 대해 더 많은 말씀을 하셨다. 본장에서도 천국에 관한 가르침이 언급되고 있다. 본장에서 언급되는 천국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천국에 초대하여 불러들이시는 방법과 하늘나라에서 크게 되는 자에 관한 말씀이다. 한편 본장은 예수께서 떠나실 때까지 소경을 고쳐 주시사 마지막까지도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포도원 비유를 베푸심으로써 영생의 문제에 있어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자들이 많을 것을 가르쳐 주신다(1-16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열두 제자에게 다시 한번 수난에 관한 예고를 하신다(17-19절).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미가 예수께 와서 주의 나라의 좌우편에 자기 아들들을 앉혀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자기의 구하는 바를 알지 못한다고 책망한다. 다른 열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분히 여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사 섬김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신다(20-28절). 저희가 여리고를 떠날 때에 소경 둘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간절히 낫기를 구하니 예수께서 눈을 고쳐 주셨다(29-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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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포도원 농부의 비유.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ㅁ 하나님의 구원 방식
ㅇ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자(영생 얻는자) (1-16 )
여기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 비유’는 사복음서 중에서 오직 본서에만 나오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앞장의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의 대답(19:23-30)에 연관된 것이다. 즉 이것은 영생의 문제에 있어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을 수 있음에 대하여 재차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먼저 된 자란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받고 타민족에 앞서 복음의 진리를 먼저 들은 유대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나중 된 자란 그보다 늦게 복음의 진리를 접한 이방인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나타내시려 한 요지는 먼저 된 자나 나중 된 자가 모두 똑같은 품삯을 받는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 요지는
(1) 먼저 된 자나 나중 된 자나 동일하게 영생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한 것(15절)이라는 점 (2) 이 같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 (3)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 비유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우리가 구원을 얻음에 있어서 자랑할 만한 인간적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 즉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혈통적 요소 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3:9,10).
(2) 구원은 그 어떠한 인간적 공로와 노력에 의해서 획득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해서만 부여될 수 있다(롬 3:24).
(3)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이 주어진다(롬 3:22).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 주님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ㅇ 계속해서 부르심 (1-7)
포도원 주인과 품꾼 비유에서 보면 포도원 주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마다 장터에 나가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을 부르신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타락 때부터 종말의 은혜의 때까지 쉬지 않고 인간들을 하늘나라에 초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행2:39;벧전3:20). 실로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의 날 동안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벧후3:9) 기다리고 계신다.
ㅇ 품꾼들의 불만 (11, 12 )
포도원에 일찍 온 자들은 자신들이 늦게 온 자들과 똑같은 품삯을 받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신 은혜는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곧 먼저 온자(구약의 유대인)나 나중 온자(교회, 이방인)나 온전히 주인의 권리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포도원의 품삯 곧 은혜는 동일한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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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 죽으심과 부활의 예언.
17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로 이르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ㅇ 세 번째 수난 예고 (17-19 )
첫 번째(16:21-23), 두 번째(17: 22,23)에 이은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이다(막 10:32-34;눅 18: 31-34). 그런데 여기서는 1,2,3차를 통틀어 최초로 예수께서 어떠한 수난을 당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또한 예수의 죽음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어떻게 관여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 고난은 예수님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기대감을 주었다. 이처럼 자신의 고난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는 것은 그 고난을 통하여 그의 영광에 들어가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절 이후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같은 예수의 수난 예고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의 메시야직 사역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과 고난을 자기의 부활과 영광에 관련시켜서 말씀하신다.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19절). 그가 여전히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의 고난에 대해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굳게 하고 그 고난을 기쁘게 수행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히 12:2). 예수님은 자신이 다시 부활해야 한다고 예언하셨다. 그것도 제 삼일만에 부활해야 한다고 예언하신다. 이 사실로 말미암아 그의 제자들은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되었다. 이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잠시 받는 고난의 두려움을 견디며 소망으로 살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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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야고보와 요한의 야심.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훈계.
20 [한 어머니의 요구]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ㅇ 제자들의 섬김의 길 (20-28).
예수께서는 수차례에 걸쳐 수난 예고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의 아들들을 위해서 세상적 특권의 자리를 부탁하였다(21절). 예수께서는 먼저 세베대의 아들들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한 채 고통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의 왕국에서 지위를 정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일깨워 주신다. 이러한 사건이 다른 제자들에게 알려지자 분하게 여겼다(24절). 저들이 아직껏 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메시야 사역의 성격을 오해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막 10:35-45). 결국 그들도 세베대의 아들들처럼 영광의 지위를 획득하기를 갈망하고 있던 자들일 뿐이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28절)’는 의미심장한 말씀으로써 자신의 겸손의 참된 의미를 깨우치셨다. 예수에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오로지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빌2:6-11). 이 섬김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서 자기 생명을 내어 주는 섬김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이 죄짐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죽음까지도 참고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구속받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 나라에서의 삶과 다른,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의 특징이다(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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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4) 여리고 도상에 있어서의 두 소경의 고치신 일.
29 [맹인 두 사람을 고치시다]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ㅇ 두 맹인의 치유 (29-34 )
이 일은 예수께서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20:17) 일어난 일로서 공관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서와는 달리 마가와 누가는 두 맹인을 대표하여 바디매오 한 사람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막 10:46-52;눅 18:35-43). 한편 예수께서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서 조차 맹인을 고쳐 주신 것은
(1) 맹인이 소리내어 부르고 치료해준것 처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요, 하늘나라의 왕이심을 알게 해주며 (2) 자신이 온 것은 사람을 섬기며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며 (3) 자신이 지니고 있는 메시야적 권능을 오직 이 일을 위하여서만 사용하시고 계심을 잘 나타내 준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서 이러한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여야 할 최고의 가치라 하겠다.
ㅇ 추종자들이 따름 (29, 34)
예수의 권능을 보고 사람들이 따랐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왕들이 그렇듯이 수행자들을 거느렸고, 그 모습은 왕의 모습 그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가식된 추종이 아닌 진정있는 추종을 받는 진정한 왕이셨던 것이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 속에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부르시고 공평하게 구원을 베푸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고난받고 섬기는 자에게 큰 상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는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