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변화산 사건 (믿음에 관한 교훈)
(믿음에 관한 교훈)
본장은 변화산 사건을 중심으로 믿음이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한 제자들의 나약함과 예수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 및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구분해서 드려야 한다는 성도의 생활에 대한 교훈 등을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신다. 거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하시어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신다(1-8절). 산을 내려오시면서 구약에서 예언한 엘리야가 세례 요한임을 가르쳐 주신다(9-13절).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예수의 제자들이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시고 그 아이를 고쳐 주신다. 자신들이 왜 고치지 못했는가를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믿음이 적은 까닭이라고 하셨다(14-21절). 이즈음에서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메시야의 수난 예고를 하신다(22-23절). 가버나움에 이르러 성전세의 문제가 발생하자 예수께서는 성전세를 지불하신다(24-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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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예수의 변화(변모).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13) 엘리야에 대한 제자들과의 문답.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ㅁ 예수의 영광
예수 생애의 5대 사건(성육신, 변모, 십자가 수난, 부활, 승천) 중 하나이다.
ㅇ 신성이 드러남 (1-2)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때로부터 엿새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다. 그 곳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거룩하시고 영광된 모습을 세 제자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께서는 장차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 갈 기둥 되는 세 제자에게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셨다.
ㅇ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 (3-8)
앞장의 기록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을 보았다(16:16). 본장에서 베드로는 그가 고백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자기 눈과 귀로 확인하였다. 베드로는 변화하신 예수를 통해 그의 신성, 곧 그리스도 되심을 보았고 그와 아울러 하늘에서 들려오는 성부 하나님의 소리, 곧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ㅇ 세상에서는 영광보다 고난에 동참해야 함 (9-13)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을 보자 또다시 인간적인 생각에 빠졌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가 이 땅에서는 영광 가운데 계실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마16:21-28), 예수가 변화산에서 영광을 입은 채로 계실 것을 간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배후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며 안위할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예수가 인류를 위해 죽고 그의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그 뜻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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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제자들의 무능, 신앙에 관한 교훈.
14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없음)
ㅁ 제자들의 무능
ㅇ 믿음이 없었기 때문 (14-16,18)
예수께서 변화산상에서 자신의 신성을 세 제자에게 보이시며 자신이 죽을 것과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시므로 자신이 의심할 여지없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리신 뒤 다시 사람들에게로 내려가셨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로 내려가자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예수의 제자들이 아들의 간질병을 고치지 못하니 친히 고쳐 주실 것을 간구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능력을 날마다 보면서도 병을 고치지 못하는 그 제자들을 꾸짖었다(막9:23). 왜냐하면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못했다 (막 9:14-29).
ㅇ 패역한 세대를 떠나지 못했기 때문 (17,19-20)
제자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육체를 섬기는 패역한 세대로부터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육신이 먹을 것과 입을 것, 잘 곳, 즐길 것 을 추구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을 정결케 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겨자씨는 모든 씨들 중에서도 지극히 작은 것으로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써 가능해지는 믿음의 비밀을 암시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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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죽음과 부활의 두 번 째의 예언.
22 [죽음과 부활을 다시 이르시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ㅇ 제2차 수난 예고 (22,23 )
이 수난 예고는 예수의 죽음과 아울러 예수의 부활도 그 한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16:21-28). 예수는 공의와 사랑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신 것(요10:18)이지 결코 죄와 죽음에 패배하신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성도는 예수와 연합하여 최후의 대적인 사망까지도 이기는 것이다. 이 강력한 부활 신앙만이 그 과정으로서의 고난을 이겨내게 해준다(고전15: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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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7) 성전세 납부에 대한 베드로에의 명령과 이적
24 [성전세를 내시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ㅁ 세금을 통한 교훈
ㅇ 성전세 납세 문제 (24-27 )
이 문제는 22:15-22의 로마에 바치는 세금(인두세) 문제와 사뭇 다르다. 후자의 경우는 당시 가장 민감한 정치 지도자들이 예수를 올무에 빠뜨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강제 세금 문제였으나 성전세는 당시 유대인들이 신앙 관습에 따라 자발적으로 바치던 일종의 자치세였다(출 30:13).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예수는 성전의 실체로서 성전보다 큰 사람(12:6)이었는데 구태여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더욱이 예수는 성전 제도를 마감하고 새 제도, 즉 복음의 교회를 도입하러 오신 분이셨기에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때가 이르러 자신이 결정적으로 메시야 사역을 행하시기 전까진 사소하고 비본질적인 문제로 방해받지 않기 위하여 지혜롭게 이 문제를 피하셨다(고전8:13).
(1) 여기서 우리는 절대 절명의 신앙 문제가 아닌 것에 있어서 쓸데없는 분쟁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마22:21; 딛 3:9)과
(2) 모든 일에는 때와 순서가 있음을 알게 된다.
결론
예수는 끊임없이 자신의 메시야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도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경건의 능력을 아직 행사하지 못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하겠다. 또한 가버나움에서 성전세를 받는 사람이 예수께서 성전세를 내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는 신분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의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약간의 이적을 행하셔서 성전세를 마련하셨다. 성전세를 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하셨던 것이다. 교회의 건덕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