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장] 사람을 더럽게 하는것 (논쟁하는 예수 그리스도)
(논쟁하는 예수 그리스도)
본장은 세 개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사건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도전하다가 그들의 외식을 책망 받는 것이며, 두번째 사건은 가나안 여자의 딸에게 씌운 귀신을 내쫓는 것이며, 세번째 사건은 말씀을 듣다 굶주리게 된 사천 명을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시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음으로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사실에 대하여 예수께 항의하자 예수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1-11절). 이에 대하여 제자들이 좀더 설명해 주시기를 요청하자 예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비유를 말씀하시고 마음의 중요성을 한번 더 강조하셨다(12-20절).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가나안 여자 하나가 자기 딸이 귀신들렸으니 주께서 고쳐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예수께서는 처음엔 거절하셨으나 가나안 여자의 현명한 대답을 들으신 후에 그 믿음을 칭찬하시고 딸을 고쳐 주셨다(21-28절).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 가에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고, 칠병이어로 사천 명의 무리들을 먹여 주셨다(29-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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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에 관한, 바리새인의 비난과, 주님의 대답.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ㅇ 내적 순수성의 교훈 (1-20 )
예루살렘으로부터 직접 파견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의 소위 유전 논쟁이다. 본서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정치, 종교의 복합적 요소로 야기된 예수와 사회 지도자들 간의 갈등이 후반부로 가면서 격렬한 논쟁의 성격을 띠게 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논쟁 뒤에 숨은 보다 더 큰 동기, 즉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참 신앙의 결여와 인간적 탐욕과 위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여기 유전 논쟁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은
(1) 율법의 정신을 버리고 형식만 강조한 점
(2) 하나님의 계명을 인본주의적 유전과 동등시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들의 생각과 동일시한 점
(3) 보다 궁극적으로 인간적 탐욕에 이끌려 예수님의 참 존재와 복음의 정신을 깨닫지 못한 유대교적 3대 실수를 저질렀다. 이 유전 논쟁 기사는 마태와 마가만이 기록하였다.
ㅁ 바리새인들에 대한 책망을 통해 주신 교훈
ㅇ 인간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지 말 것 (1-6)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과 그 계명을 바탕으로 해서 랍비들이 만든 행동 규범이 있었다. 전자는 율법이라 불렀고 후자는 유전이라고 불렀다. 그 둘 가운데 기본이 되고 모범이 되는 것은 율법이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정작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서도 유전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볼 때에는 극렬히 정죄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인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거짓 신앙이요, 위선이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러한 오류를 범치 말도록 말씀하셨다.
ㅇ 더러운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긴다 하지 말 것 (8-9)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사람의 말만 따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떠들고 다녔다. 즉 바리새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마음과 몸이 결여된 입술만의 신앙 고백은 헛된 것이다(사29:13;고잔4:20). 이러한 신앙은 거짓된 것이요,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믿노라 하지 말고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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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군중에 대한 경고와, 제자들에 대한 교훈.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ㅇ 영적 맹인들을 따르지 말 것 (
사람의 말만 따르면서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맹인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알지 못한다(마16:6). 따라서 그들을 따라가면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고 멸망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따라가지 말 것을 교훈해 주셨다. 실로 우리는 영의 눈을 떠서 그러한 자들을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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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8) 가나안 여인이, 그 딸을 고쳐주기를 구하다.
21 [가나안 여자의 믿음]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ㅁ. 가나안 여인 사건을 통한 교훈
ㅇ 하나님 백성의 예수님께 대한 이방인들의 믿음 (21-28 )
이방인들의 믿음을 보여 주는 두 번째 기사로서 막 7:24-30에도 나온다. 첫 번째인 백부장 사건(8:5-13)의 경우 그는 유대인의 정복자로서 자기 신분에 맞추어 예수님을 이해했던 반면, 여기 가나안 여인은 평민으로서 일반 유대인에게서 조차 멸시를 받는 초라한 한 여인에 불과하였다. 여인의 고백은 예수님의 신적 존재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과 예수님에 대한 겸손한 믿음을 가졌다는 점이다. 한편 이 기사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유대인은 배척했으나 오히려 이방인은 믿고 순종하였던 역설적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개념이 구약적 관점에서 신약적 관점으로 옮겨짐을 분명히 암시해 주고 있다. 즉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1차적으로 유대인에 국한되었으나 신약에 이르러서는 예수를 믿는 전세계 백성들로 확장되었다(행 7:6).
ㅇ 예수는 메시야 (21-22)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사 거기서 사역을 하실 때에 귀신들린 딸을 둔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께 나아와서 도움을 청했다. 그때 가나안 여인은 예수를 불렀는데 그녀가 부른 호칭은 ‘주 다윗의 자손’이었다. 이것은 메시야를 호칭하는 것이다(사11:1-16;겔34:23-31). 예수는 이방 여인으로부터도 메시야로 인식될 만큼 분명한 표식을 가진 분이셨던 것이다.
ㅇ 끈질기게 구할 때 능력을 입음 (21-23)
가나안 여자가 자기 딸의 귀신들림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께 외치자 예수께서는 대답하지도 아니하셨다. 나중에는 친히 거부 의사를 표명하셨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예수께 간청하였다(약1:5). 그 끊임없는 간청에 동하여 예수에서는 청을 들어주셨다(마7:8).
ㅇ 겸손히 긍휼을 구할 때 은혜를 얻음 (24-25)
예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려고 자기는 이방인에게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니므로 그녀를 도와주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여자는 개도 주인의 음식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말로 주님의 적은 은혜라도 좋으니 달라고 간청하였다. 가나안 여자는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 겸손히 예수의 은총을 구함으로써 예수의 능력의 은혜를 받았다. 우리도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께 지극히 겸손한 가운데 우리 구할 것을 아뢰어 응답받도록 해야 하겠다(빌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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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1) 많은 병고침의 이적.
29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39) 4천명 먹이신 이적
32 [사천 명을 먹이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ㅇ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고통을 해결받음 (29-31)
한편 예수를 위대한 의사(29-31절)와 창조자(32-39절)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지(14:13-21) 수개월 후 이방 땅에서 유사한 기적을 베푸신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렇듯 예수는 병든자들과 영혼의 기갈을 해소시키는 데에 마음을 두셨다. 요컨대 예수는 유대인에게 있어서나 이방인에게 있어서 동일하게 ‘생명의 떡’을 주시는 분이다(요 6:35). 즉 예수께서는 인간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심으로써 자신만이 인간의 모든 고통을 제하시고 모든 부족을 채워 주시는 구주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요14:6;행4:12)).
ㅁ 칠병이어 사건이 주는 교훈
ㅇ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생명을 유지함 (32-38)
예수께서 적은 양의 양식을 가지고 많은 수의 사람들을 먹이셨다는 것은 그가 만물을 있게 하신 창조주라는 사실과 그만이 우리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천지의 주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예수님은 구주로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요4:14;계22:1)와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살게 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그 분안에서 영원한 것으로 충만하게 살아야 하겠다.
ㅇ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운데 흩어져 전해야 함 (39)
칠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아마도 그들은 돌아가서 그들이 본 놀라운 사건을 사람들에게 전했을 것이다(행1:8증인). 우리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보았다면 은혜의 감상에만 머물지 말고 생활로 돌아가서 그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전해야 할 것이다(마28:19-20).
결론
주님은 입으로만 섬기고 마음과 몸으로는 섬기지 않는 자를 미워하신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외형만을 강조하고 율법의 정신을 간과했다. 즉 그들은 율법의 외형만 지켜진다면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하셨다. 우리는 마음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은 주의 긍휼을 바라보는 자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세상을 좇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긍휼을 기다리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