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 장]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본서 전체의 주제이자 절정인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환상이다. 요한은 이를 드러내기 위해 새 시온 성(사 60장), 재건될 예루살렘(사 54장), 거룩한 땅(겔 48장)의 내용을 인용 묘사하고 있는데(12, 13, 19, 25절) 이는 그가 새 예루살렘을 이 모든 예언의 성취로 보았음을 나타내 준다. 한편 9절 이하는 새 예루살렘 성의 거룩성과 영광을 숫자(12-14, 16, 17, 21절)와 외적 형태(16절), 재료 (11, 18-21, 23절)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는바,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성도들의 신앙에 소망과 위안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본장의 내용 구조를 보면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보았다. 거기는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다. 주께서 주시는 생명수 샘물을 마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1-8절). 그 후에 요한은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본다. 거기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온갖 보석들로 꾸며져 있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 열두 문에 새겨져 있었는데, 그 열두 문은 진주 문이었다. 그리 고 열두 기초석에는 십이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열두 기초석은 각각 다른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9-21절).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고, 해와 달도 없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고 빛이기 때문이다. 성문들은 항상 열려 있으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22-27절).
[1] 새 예루살렘(1) ( 2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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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새 하늘과 새 땅과 그 축복.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ㅁ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환상
ㅇ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 (1-2)
최후의 심판에 대해 바라본 환상을 기록했던 요한은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노라고 하였다(벧후3:13). 새 하늘과 새 땅은 더 이상 사망이나 고통, 죄악이 존재하지 않는 성도들의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 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았다고 하였다. 이 모습으로 보아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택한 성도들에게 새 창조를 선물로 주신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은 이곳에 들어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ㅇ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곳 (3-8)
요한은 하늘 보좌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중 성막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만나시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새 예루살렘은 구속받은 성도들의 공동체 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게 될 처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죄와 사망 등의 모든 인간적인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곳이다. (2)옛 예루살렘과 대조가 되는 곳으로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인 실현이다. (3)구속받은 성도들에게 온전히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4)그리스도에 대한 성도들의 순결과 헌신을 상징한다. (5)성도들이 장차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그들의 미래적 소망이 실현되는 곳이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기록하라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루었도다’ 하셨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과 연관되며,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구속을 완성하시고 다시금 그 창조를 완성하셔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모든 저주는 제거되었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축복만이 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새 창조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이 있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선언하신다. 이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과 우상 숭배자들로 나뉜다. 그들은 불과 유황 못 즉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위해 예비된 곳에 함께 들어가게 된다. 그것은 둘째 사망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확정된 심판의 형벌이다.
[2] 새 예루살렘(2) ( 2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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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신부인 교회)의 모양.
9 [새 예루살렘]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ㅁ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
새 예루살렘은 장차 영광을 누리게 될 교회와 그들이 거하게 될 처소를 의미한다. 한편 본문은 새 예루살렘의 명칭과 숫자, 외형, 재료 등에 대해 상징적인 표현 기법을 많이 사용함으로 영원 세계의 신비성과 영광스러움을 강조하였다. 본문의 내용은 (1)새 예루살렘의 외적인 형태(9-17) (2)새 예루살렘 성의 재료(18-21) (3)성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누리게 될 생활(22-27)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ㅇ 새 예루살렘의 모양 (9-17)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 후에 일곱 대접을 가졌던 천사들 중 하나가 나아와서 요한에게 ‘어린양의 아내’를 보이겠다고 하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다(9,10절). 이 새 예루살렘은 한 성의 건물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거하는 거듭난 자들 곧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외모와 넓이는 겔 40-48장의 내용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본장 2절에서 잠깐 소개된 성의 모습이 여기서는 확대되어 구체적으로 묘사 되었다. 크고 높은 성곽은 견고성과 하나님의 보호를, 열두 문…열두 지파는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자를, 열두 기초석은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도들의 증거 위에 세워진 것임을 상징한다. 한편 본절에는 첫째, 교회의 보편성이 강조 되어 있다. 즉 교회 공동체는 신·구약 시대를 총망라한 것으로 우주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교회의 계속성과 일관성이 강조되어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바로 신약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계시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이다(요 14:7). 천사의 새 예루살렘 척량은(15-17절) (1)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보여 주고 (2)죄악이나 영적 타락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축복해 주시는 것과 (3)성도들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성취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16-17절)는 정입방체인 지성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와 완전한 통치를 상징한다. 즉 새 예루살렘 성은 전체가 지성소이며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이다(출 25:10-22;왕상 6:20).
ㅇ 새 예루살렘의 재료 (18-21)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그 기초석과 성문이 모두 귀한 보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부와 사치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암시하며 구속받은 성도들의 존귀성을 상징하고 있다. 특히 벽옥으로 된 성곽은 하나님의 존귀와 견고성을, 유리처럼 맑은 정금은 신부의 순결과 아름다움 및 불변성을 상징한다. 한편 이 보석들은 출28:17-20의 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이는 보석이 배경이 된 것으로 하나님의 모든 구속사적 약속이 새 예루살렘에서 성취될 것임을 말해 준다(요 4:21).
ㅇ 새 예루살렘에서의 생활 (22-27)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필요 없는 이유는(22절), (1)성도들의 직접적인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들과 늘 함께 계시며, (2)새 예루살렘 성 자체가 완전한 정입방체로 지성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 60:19,20의 내용이 배경이 된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도 더 찬란히 빛난다는 것과 그 앞에는 오직 진리와 사랑과 공의만 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사 60:3). 구속받은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에서 누리게 될 생활상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24-26절). (1)모든 사람들이 빛 가운데로 다니게 될 것이다. 여기서 ‘빛’은 진리와 공의와 사랑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 (2)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 본문의 땅의 왕(24절)은 그리스도께 충성한 자들을 의미한다. (3)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된다. ‘성문이 닫히지 않는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부여될 자유로운 생활상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사 60:11). 속된 것의 ‘속된’(27절)은 ‘모독적인’의 뜻으로 주로 우상 숭배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며, 가증한 일들은 말세에 나타날 배교자들이 행하는 범죄를 의미하며 이것은 온갖 타락의 본보기이다.
< 성전 족장 시대에는 성전이 없었다 >
모세의 율법 시대에 성막이 있었고, 솔로몬에 가서야 성전이 세워졌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단번에 십자가의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다. 이제 신약시대 성도들은 성전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구약적인 의미에서의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전의 본래적인 의미인 인간들의 속죄 제사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속에 내주하시게 되었다. 성도들의 몸이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된 것이다. 본래 부터 건물로서의 성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은 성도들이 있는 모든 곳에 임재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곳에 임재하시어 성도 개인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고전6:19,20).
결론
본장에 나타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우리 성도들의 영적 삶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하다.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은 눈물과 슬픔과 고통이 없는 참된 기쁨의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소망은 성도들의 현재적인 삶에 강력한 힘을 주는 것이다. 소망이 큰 사람일수록 현재의 삶도 건전하게 된다. 새 예루살렘에서의 삶은 빛 가운데서의 삶이요, 성문이 닫히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다. 거기는 진리와 자유가 있다. 오늘 우리의 환경이 고달프고 낙심된다고 할지라도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종말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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