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본장은 요한복음의 서론으로서 태초의 영원하신 말씀이 성육신하여 세상에 거하시게 됨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례 요한에 의해 전파 되어짐을 기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오시어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배척당하셨지만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본장은 말씀 그 자체인 예수(1-4절), 증거자 세례 요한(6-8절), 참 빛이신 예수(9-13절), 말씀의 성육신(14-18절), 세례 요한의 증언(19-28절), 하나님의 어린양(29-34절), 첫 번째 제자들(35-42절) ,빌립과 나다나엘(43-51절)로 구성되어 있다.

[1] 예수의 신성 ( 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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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ㅁ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ㅇ 창조주 이신 말씀 (Logos,1-3)
창조주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자로서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증거한다. 때문에 요한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사 그것을 다스리고 계시며 성육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증거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사랑으로 임하신 영원한 말씀(로고스)이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시기 이전에는 음성으로만 또는 부단히 말씀의 사역을 통하여 이 세상과 접촉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말씀안의 생명 그리고 생명을 발산하는 빛을 강조한 것은 죄악된 이 세상의 어둠과 죽음에 빛을 대조시키기 위해서이다. 생명의 근원이며(4절), 모든 사람의 빛이신(9절) 제2위 하나님을 가리키는 인격적 말씀으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특히 ‘말씀’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상호 의사 소통의 길을 터놓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던 그리스도의 은총을 드러내고 있다.

ㅁ (참고) 로고스( Logos)
그 어원 상 ‘말씀’을 뜻하며 곧 이성의 원리. 즉 진리를 의미한다. 이 ‘말씀’ 곧 ‘로고스’는 창 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영원성을 나타내기 위해 쓰였다. 말씀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로고스’로, 사도 요한에게 있어 이 말처럼 그리스도의 신성과 창조 사역, 그리고 중보 사역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용어가 없었다. 또한 예수를 상호 의사 소통의 개체인 ‘말씀’으로 묘사하여 예수는 인간과 관계성을 갖고 계신 계시자였던 사실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킨다. 때문에 요한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사 그것을 다스리고 계시며 성육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증거하신 예수님이야말로 ‘로고스’라고 기록한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이 육신을 입으실 수 있었다는 것은 피조물로서 제한성을 가진 다른 존재들과는 달리 예수는 영육간의 모든 영역과 차원을 지배하시는 분임을 보여 준다. 한편 성육신 사건의 목적과 거기 담긴 겸손하고 끝없는 사랑에 대해서는 막 10:45절에 잘 나타나있다.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는 구절 속에 사용된 ‘함께’(with)라는 전치사는 동등하다는 개념 뿐만 아니라 연합되어 있으며 동시에 구별된 다른 주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 ‘함께’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공존하면서도 엄연히 구별되는 인격체라는 사실과 그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음을 잘 묘사하고 있다.

ㅇ 생명의 빛 (4-5)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4절)에서 ‘생명’ 이란 말은 ‘영원한’이라는 형용사를 수반하여 ‘영생’(3:15,16). ‘영원한 생명’(요일 5:12)이라는 용어로 자주 나타난다. 이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밝힘으로써 생명의 근원이 예수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에서 ‘빛’은 정의, 진리 등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어 왔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출 19:16-20)에 찬란한 빛이 수반되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을 빛으로 묘사한 경우가 많았다(시 27:1;사 60:20). 나아가 다윗은 하나님을 광명으로 노래한 동시에 생명의 원천으로 찬양함으로써 하나님과 빛과 생명을 하나로 묶었다(시36:9). 본절의 표현은 이 같은 사상의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요(1절), 빛이시요(8:12), 생명이시라는 명제(14:6)는 본서와 요한일서에 반복된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깨닫지 못하더라’(5절), 시대를 불문하고 일반적으로 선의 세력은 빛으로, 악의 세력은 어둠으로 표현되었다. 성경에서도 어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영적 상태와 악한 행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3:19; 롬13:12; 살전5:4). 본절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이 세상의 영적 무지를 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말씀의 성육신을 증거한 세례 요한 ( 1: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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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증인 요한과 참 빛이신 그리스도.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14)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의 중생.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ㅇ 빛을 영접하는 자의 영광 (5-13)
말씀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영접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 빛을 영접하여 구세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육체적인 자손이라는 이유로 선민 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믿는 자들로 자기 백성을 삼으셨던 것이다(갈3:26). 이는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 난 자들이다.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6절)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그는 세례 요한이라고 불리었으며,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써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였다(마 3:1-12). 그가 본서에서 언급될 경우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극진히 찬양하는 모습으로 발견된다(15, 26-27, 29-34절; 3:28-30).

ㅇ 믿는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증언한 세례요한 (12-13)
세례요한은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10절) 영접하지도 않는 세상과(11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들을(12,13절) 대조시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알리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떠한 분이신지를 소중히 알려주었다. 즉 그리스도는 참 빛되신 생명의 주요,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요, 태초부터 계신 영원한 말씀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요한은 ‘그 이름’을 즉,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인 ‘예수’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고자 복음을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12-13절).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입게되고 그의 삶은 빛된 진리의 삶이 되는 것이다.

ㅇ 육신이 되신 말씀 (14)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심으로써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인간들에게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영광의 하나님을 계시해 주셨던 것이다(롬8:3).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으로서 말씀의 성육신을 통해서 보다 명확하게 증거되었다. 인간은 성육신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이다(골2:9-10).

[3] 세례 요한의 증언 ( 1: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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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 그리스도의 신분에 관한 세례 요한의 증거.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ㅇ 세례 요한의 증거 (15-18)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육신을 입으신 말씀의 신성(14절)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마3:11,12; 눅3:15-17). ‘은혜 위에 은혜’(16절)의 본 의미는 이미 공급된 은혜를 뒤따르는 은혜, 즉 끊임없이 이어지는 ‘충만한 은혜’이다. ‘율법은 모세로…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7절)은 시내 산에서 영광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갈3:11), 우리는 다만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받을 수 있을 뿐이다(엡 2: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18절)표현은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의 본체를 직접 목격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세가 비록 여호와와 대면했다는 명성을 얻었지만(출33:11;신34:10), 그 역시 하나님의 본체를 본 것은 아니었다(출33:17-34:9). 그런데 이제는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요일1:1).

[4] 세례 요한의 증언 ( 1:1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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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요한이 자기의 신분을 말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19 [세례 요한의 증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ㅇ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 (1:19-4:54 )
19절 부터는 본서의 2부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1) 세례 요한의 증거(1:19-34) (2) 요한의 제자들의 증거(1:35-51) (3)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첫 표적(2:1-12) (4) 예루살렘 성전 청결 사건(2:13-25) (5) 니고데모와의 대담(3:1-21) (6) 사마리아 성에서의 전도(4:1-42) (7) 가버나움 고관의 아들을 고치신 두 번째 표적(4:46-54) 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각시키는 조명등 역할을 하고 있다.

ㅇ 세례 요한의 증거 (19-28 )
이 부분은 저자가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첫 한 주간 중 첫날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유대인들과 세례 요한의 변론 및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가 소개되고 있다. 2:11까지는 주님의 공생애 초기의 한 주간에 있었던 일을 매일(1:19-28; 1:29-34; 1:35-42; 1:43-51; 2:1-5;2:6-11) 보도하고 있으며, 마지막 한 주간의 생애(12:1-21:25)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내용을 보인다.
본문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예언 하신대로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 앞에 보내시어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준비토록 하셨다. 요한은 회개를 외치며 요단 강가에서 회개하는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때에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요한에게 그 정체를 물었다. 그들은 세례 요한에게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야냐고 물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23절)라고 대답하였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명확하게 깨닫고 대답하였다.

[5]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등장 ( 1:2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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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4)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 또는 성령의 세례주시는 자로서의 예수.
29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ㅇ 세례 요한의 3대 선언 (29-34 )
세례 요한은 (1)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29절), (2)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33절,마 3:13-17;막 1:9-11;눅 3:21-23), (3)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34절). 또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다(31절)고 했는데 이는 육적으로 몰랐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 사명에 대해서 몰랐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사촌 형제였기 때문이다(눅1:36).

ㅇ 하나님의 어린양 (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 표현은 사 53:7의 인용이다. 구약의 제물은 사람이 준비한 양인데 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다. 그는 인간의 모든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대속물로 드림으로써(마 20:28)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14:6;히 10:20).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구속 역사를 성취하심에 있어서 주권적으로 치밀한 계획과 섭리 속에 진행시키셨던 것이다(마20:28; 14:6; 히10:20). 예수께서 요한에게 나오실 때에 요한은 예수에 대해 사람들에게 증거했다. 요한은 자신의 물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 소개하고자 함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사역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 아래 종속시켰다. 세례요한은 참으로 그리스도를 아는자요, 하나님앞에 겸손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며 크게 기뻐하고 기쁨으로 충만한 자였다(3:29).

[6]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 ( 1:3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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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2) 최초의 두 제자와 시몬.
35 [요한의 두 제자]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ㅁ 처음 세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

ㅇ 예수께 제자를 인도하는 세례 요한 (35-39 )
본문에는 그리스도의 공생애 첫 주간 중 사흘째 되는 날의 사건이 실려 있다.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 중 유능한 두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장면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세례 요한이 지녔던 영적 통찰력과 자신이 아끼는 제자들을 주저없이 예수께 인계하는 겸손함을 보여준다.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최초 만남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 만남은 예수님을 따르게된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만남이었다(마 4:18-22; 막 1:16-20; 눅 5:1-11).

ㅇ 안드레와 베드로를 부르심 (40-42)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사역 중의 하나는 나중에 예수의 제자가 되어 사도가 된 자들을 준비시킨 것이었다. 본문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안드레와 함께 있었던 제자는 본서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이다. 안드레는 예수를 좇은 후 자기 형제인 시몬에게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41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상 최대의 뉴스였다. 안드레는 스승의 소개로 알게 된 한 청년이 자기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확인하고 그날 중으로 시몬을 찾아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한 것이다. 이 말을 좀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우리가 (찾던) 메시야를 발견했다’(We have found the Messiah, KJV, RSV, NIV). 그리고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게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이는 장차 베드로가 예수의 수제자로서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임을 예고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했다. 41절의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기름부음받은 자의 뜻이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로 번역되는데, 메시야이신 주님은 왕, 제사장 또는 중보자로 사역을 온전히 수행하셨다.

[7] 빌립과 나다나엘 ( 1:4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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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1) 빌립과 나다나엘. 주님과의 회화.
43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시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ㅇ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심 (43-44)
그리스도 공생애 첫 주간 중 넷째날은 갈릴리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43,44절).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인 빌립은 예수께 ‘나를 좇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빌립은 예수께 부름을 받은 즉시로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메시야를 만났음을 전하였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사렛과 같이 비천한 곳에서 어떻게 메시야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을 찾아가셨고, 나다나엘은 그분이 곧 메시야이심을 알게 되었다. 나다나엘은 예수께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증거를 받았다. 마음이 깨끗한 나다나엘은 예수를 만나자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쉽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을 약속하시며 그러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ㅇ 빌립의 전도법 (45-49 )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한 것은, 신앙에 대한 변론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직접 만난 나다나엘은 만나자마자 즉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다(49절). 신앙은 이론보다 영적 체험이 분명해야 한다(4:29). 나다나엘은 예수님께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찬사를 받았다(시32:2).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체험하고 나서 자신의 편견과 자만심을 버리고 예수님에게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찾게 되었다(47,48절).

ㅁ 나사렛 (45,46)
예수와 더불어 잘 알려진 곳으로서 이곳은 예수가 30여 년 동안 생활해 온 곳이기에 항상 예수의 이름과 함께 붙어다니는 지명이 되었다. 그런데 이 곳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천대시되는 마을이었다. 나사렛이란 명칭은 ‘거룩’이라는 뜻이지만, 그 곳 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비교적 낮고 천박했다.그런데다 무식하고 성질이 괴팍하며 다른 도시의 문화적인 주민들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이러한 자연 환경과 주민 환경은 유대 사회에서 나사렛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마을로 생각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곳 나사렛에서 생활했을 뿐 아니라, 그의 공생애 기간에 이 곳에서 이적도 행하시고, 천국 복음도 증거하셨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았다(마13:55-56). 하지만 오늘날 이 나사렛은 예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런 곳이 되어 버렸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교훈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결론
예수께서는 영원하신 창조주로서 이 땅의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자신의 증거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었고, 여러 사람들이 그분을 좇았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나타난 사랑과 낮아짐의 겸손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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