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장] 참 지혜의 가치 (세상을 사는 지혜)
(세상을 사는 지혜)
본장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허무한 인생 가운데서도 보람 있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지혜이다. 하나님 중심의 지혜는 인본주의적 지혜와는 달리 우매한 것보다 월등한 우월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성도가 이러한 지혜를 근거로 신중하게 살아가야 함을 전도자는 역설한다.
[1] 지혜자와 우매자 ( 7:1-6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ㅁ 지혜자의 마음
ㅇ 죽음 뒤의 소망 (1-4)
‘죽는 날이 낫다’는 말씀의 의미는 성도의 죽음에는 소망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죽음을 허무의 끝으로 보지 않고 소망스러운 삶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 지혜자는 쾌락을 위해 살지 않고 죽음을 소망하며 죽음 뒤에 남겨질 아름다운 이름과 자신의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서 매일의 삶을 선하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산다.
ㅇ 책망을 즐겁게 생각하는 지혜자 (5-6)
지혜자의 책망으로 우리의 타락을 억제하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로써 즐거움을 얻는 것보다 훨씬 낫다(5절). 솥 밑의 그 가시나무는 큰 소리와 큰 불을 잠시 동안 내기는 하지만, 잠시 후에는 재만 날리며, 솥에 있는 것을 끓이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만다. 이 비유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시끄럽고 잠깐 동안 반짝하는 것이지, 참된 기쁨의 표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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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ㅇ 지혜자의 경계 사항 (7)
지혜자는 탐욕과 뇌물, 교만한 마음과 인내하지 못하는 마음, 성급히 화를 내는 마음, 자족하지 못하고 지나간 과거의 일에 집착하는 마음, 이웃을 돕지 않으려 하는 이기적인 마음 등을 경계해야 한다. 뇌물은 책망을 멀리하게 하며 간교하고 아부하는 사람만을 곁에 두게 한다. 따라서 왕의 판단은 아부하는 자들의 칭찬 때문에 흐트러지게 된다. 고통스럽지만 진리를 바로 알려는 태도가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
ㅇ 하나님 중심의 삶 (8)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의롭고, 선하며, 지혜로운 삶을 뜻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부패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면 죄악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ㅇ 우매자의 속성 (9)
헛된 인생을 사는 우매자는 불의하고, 부정직하며, 급하게 노를 발한다. 노란 자신이 도모하는 일이 자기 뜻대로 진척되지 않는 것을 이유로, 하나님의 섭리를 불평하며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질서에 대항하는 그릇된 행동이나 감정 상태를 가리킨다. 노는 지혜자나 우매자 모두 발할 수 있지만 지혜자는 노를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 반면 우매자는 노를 오래 머물도록 한다. 또한 우매자는 훈계를 멸시하고 다툼을 일으키며(잠18:6), 참견하기 좋아하고 위선으로 가득 찬 자기 마음을 믿는다(잠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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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ㅇ 지혜의 유익 (11-20)
본문에서 전도자는 지혜의 유익을 강조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한다. 전도자는 돈과 지혜를 비교하면서 지혜의 우위와 가치를 증명하고, 또 인간이 미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무궁하신 기사를 설명한다. 인간은 장래의 일을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삶에 자족하며,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근신해야 한다. 세상에는 자기 의로움 때문에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악행 중에 장수하는 악인이 있기 때문이다(15절). 성경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다. 그리하면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신다고 증거하였다(약1:5). 참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다. 따라서 성도는 더 많은 위기에서 벗어날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하겠다.
ㅇ 죄에 대한 고백의 당위성 ( 7:21-22 )
‘의인은 세상에 없다’(20절)는 말씀의 의미는 죄의 보편성을 말하며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고 시인해야 한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깨끗한 삶으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다(요일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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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27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ㅁ 지혜자의 고백
ㅇ 인간 이성의 한계 (23-24)
전도자는 가장 완전하고 진지한 자세로 삶을 탐구하여 지혜를 얻으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도자의 열의와 탐구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의 지혜로 인생의 비밀을 알 수 없었다. 왜냐 하면 그 비밀은 인생의 한계를 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25)
ㅇ 인간 의지의 나약함 (25-28)
전도자가 지혜로써 인생을 탐구하여 얻은 결과가 몇가지 있었다. 이렇듯 약간의 진리를 깨달은 전도자는 기뻤지만 이내 절망하였다. 왜냐하면 전도자는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를 알지만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않는 의인은 세상에 없다. 인생 중에는 죄의 유혹과 올무가 곳곳에 놓여 있다. 인간의 나약한 의지로는 그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래서 지혜자는 진리를 발견한 후에도 나약한 인간 의지와 연약한 능력 때문에 좌절한다.
ㅇ 인간 본성의 죄악됨 (29)
전도자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속에 악함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지혜의 헛됨을 지적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직하게 만드셨으나 우리가 스스로 타락하여 죄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울지라도 악한 꾀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의 지혜는 무용지물이다. 그런즉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회복이 우선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결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인생을 산다면 보람되게 살 수 있다. 이 지혜는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도에 지나치지 않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지혜를 실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우리를 절망시킨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지혜를 받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참 지혜를 구해야 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