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론

1. 도입

설교론

– 두 세계를 연결시키는 다리 –

목회의 열쇠는 설교이다. 설교에 대한 통찰력, 확신, 설교의 능력을 깨닫기 시작하면 목회는 변하기 시작한다. 목회의 시작은 설교이고, 결론도 설교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목회에서 설 교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주일 설교가 은혜가 있고 성령이 역사하면 주중의 모든 프로그램이살아나고, 주일날 은혜를 받으면 교인들은 목회자의 약점, 실수를 용서한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교회를 차별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설 교가 중심이 되지 못하면 교회는 불균형상태가 된다. 교회가 작을 때는 소그룹훈련, 제자훈 련, 인간관계로도 유지할 수 있지만그 이상 성장하지는 못한다. 비유로 말하자면 전도가 앞문이라면 설교는뒷문이다. 전도되어 온 사람들에게 설교로 은혜를 끼치지 못하면 사람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빠져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설교에 있어서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알고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노력이 계속되었을때 목회의 생명력과 교회의 부흥이 계속될 것이다.

2. 설교의 정의

설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설교자를 통하여 전달하 는 성령의 사역이다. 예배가 교회의 심장이라면 설교는예배의 심장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 이 있는 그대로 성령의 감동으로 선포되면 예배가 살아난다. 교회에 있어서는 말씀의 사역 보다 더 중요한 것이없고 목회자의 부름은 말씀으로의 부름이다. 설교 속에는 목회자의 비 전도 있고 목회에 대한 그림과 색깔도 있다. 설교를 통해 목회자는 성도들의영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1) 설교는 선포(Proclamation)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는 가르칠 때 사용하는 언어이다. 설교 언어는‘그렇습니다’ ‘회개 하십시오’ 라고 해야 한다. 설교에는 하나님의 주권이선포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삶이 보여 야 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야한다. 설교의 결론은 기독론적이어야 한다. 예수를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선포되어야 한다. 이 선포를 들을 때 마다 사람들이 흥분하고 결심하고 삶을 포기하고 예수를 위해 살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설교이다.

2) 설교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은사이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고 간결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설교자가 되기전에 하나님의 설 교의 은사가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이미 목회자가 되어 설교를 해야만

하는 위치라면 생명을 걸고 설교를 뚫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설교를 뚫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1 최선을 다하라.

2 좋은 방법을 택하라 – 좋은 선생을 만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3 깊은 영성을 가져라 – 깊은 기도

3) 설교는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설교는 연속극 같아야 한다. 기승전결의 구조가 있어서 웃음과 흥분과 기쁨과 감격이 그 속 에 있어야 한다. 설교가 끝나면 다음 설교가 듣고 싶다는 기대감이 생겨야 한다. 설교가 구 약과 신약을 왔다 갔다 하면 일 년 동안 설교를 들었어도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 기억이 나 지 않는다. 그래서설교는 단회성이어서는 안되고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창세기, 로마서… 처럼 책을 하나씩 정해 설교하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4) 설교는 영을 살리는 것이다

설교는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은 설교를 위한 한 과정일 뿐이다. 논리적이지 않은 설교는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 그러나 설교는 영에설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만으 로 해결되지 않는다. 설교는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고,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고 영이다. 교회에 들어올 때는죽은 영혼의 얼굴이었던 사람이 돌아갈 때는 산 영혼의 얼굴이 되어 기 쁘게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이성이 설득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육을 기 쁘게 하는 설교나 혼을 기쁘게 하는 설교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영(spirit)으로 영에게 설교하면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나타나서 사람을 살리게 된 다.

3. 설교의 4가지 원리

빌립보서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 니 곧 십자가에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이 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 설교는 말씀이 성육신(Incarnation) 되는 것이다

설교는 말씀이 통째로 설교자의 몸 안에 들어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설교자의 이성과 언어와 몸과 삶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 설교이다. 절규하는 사람은 원고를 보면서 절규

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이야기를하면서 어떻게 흥 분이 되지 않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젖어버린 사람들은 한이 맺힌 것처럼 흥분 한다. 그리고 복음과 생명의 말씀이쏟아진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에게 Incarnation 되 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설교자의 머리에 설교의 내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설교자의 몸안으로 설교의 내용이 들어와서 원고가 없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가몸 안에 들어 와 있다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고 5분에 요약해서 할 수도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와 동일화(Identification)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셨다. 하나님이 인간과 동일화되신 것이다. 예수님은하나님도 잘 알지 만 인간도 잘 아셨다. 설교자는 두 가지를 잘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고, 동시에 인간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들의 설교는 번역식 용어나 신학적 용어를 사용해 서는 안 된다. 생활언어,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내용,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이 야기해야 한다. 피상적인 언어의 설교는 피상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구체적 언어의 설교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인간의 내면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다 감추고 있다. 인간의 허구성, 위선, 죄성, 비밀이 인간의 내면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세계를 예 리하게 파고들어가야한다. 포장된 인간의 내면들을 풀어 보이는 것이 설교이다. 설교는 회 중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자기 이야기처럼 들려야 한다.

설교에서 세상지식을 말했을 때 회중석의 전문가들에게는 구지식으로 들릴 수 있다. 세상의 지식은 세상에 제한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고 천국까지 가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어떤 전문가라도이 말씀은 들어야 한다. 설교자의 영적 권위와 확신과 자신감이 있을 때성경 중심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 자신감이 있으면 말이 쉬워진다. 설교는 Landing(결론)을 잘해야 하는데, 가지치기를 잘하고 깔끔하게 끝내야한다.

3) 설교는 Communication이다

예수님은 인간과 Communication하셨다. 설교는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Communication이 다. 설교 준비를 많이 했어도 어떤 상황에서는 그 설교를 포기할 용기가 필요하다. 설교는 말하는 것도 설교이지만 설교자의삶도 설교이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들었 다. “목사님이 1년동안 굉장한 고난을 받으면서도 한 번도 설교에서 변명하지 않는 것을 보고 진짜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가 나빠서 사람들이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설교와 설 교자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설교를 들으면서 갈등을 하는 것 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사람들에게 오셔서 같이 밥을 잡수시고 잠을 자고, 사람들 하고 똑같이 사셨다. 피곤하셨고 목마르셨고 우셨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사람들과Communication이 되었다. 만일 예수님이 권위만 내세우고 있으셨다면사람들은 따르지 않 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주셨기때문에 진짜 Communication 된 것이 다. 마음과 마음, 삶과 삶이 연결되어야 한다.

4) 설교는 희생(Sacrifice)이 있어야 한다

설교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의 희생이 설교자에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설교에서 예수님이 보인다. 희생이 없는 사람에게는 희생이 보이지 않는다. 낮은 데로 가야 예수님이 보이고, 손해보고 고통당해야 예수님이 보인다. 말도 안 되는 핍박과 고난을 겪고도 가만히 있을 때 예수님이 보인다. 결국 설교란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교 시간에 보이는 것이 위대한웅변이나 정교한 논리나 Sharp한 지성으로

By Published On: 11월 7th, 2022Categories: NEWS0 Comments on 설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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