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안 오른다더니”… 한전만 배불리는 ‘탈원전 청구서’

한국전력공사가 이사회에서 상정한 전기요금 개편안 도입이 산업통상자원부 승인을 완료했다. 내년 1월부터 개편된 전기요금 고지서가 나올 예정이다/사진=뉴스1

2년 째 ‘전기요금 개편’을 노리던 한국전력공사(한전)이 결국 웃었다. 전날(17일) 전권을 쥐고 있던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개편안 도입 승인을 받아낸 것이다. 전기 생산에 쓰이는 석유‧석탄‧LNG가스 등 연료 가격의 변동을 요금에 반영하는 내용이 골자다. 당장 다음

달부터 개편된 전기요금 고지서가 날아든다.

합리적인 전기소비 유도?… 뒤로 웃는 ‘한전’ 

한전 입장에선 큰 숙제를 해결한 셈이다. 취지는 ‘합리적인 전기소비 유도’라지만 한전이 얻는 이득이 상당하다.

2013년부터 전기요금이 동결되면서 현행 전기요금 체계는 사실상 고정이다. 연료비 등락과 관계없이 전기료가 책정된다. 쉽게 말해 소비자는 석유‧석탄‧LNG가스 등 연료 가격이 오를 때나 떨어질 때나 같은 수준의 요금을 내왔다. 연료비 등락에 따른 손실과 이익을 한전 스스로가 부담하고 챙기는 구조였다.

◆유가따라 들썩이던 실적 리스크… “털어냈다” 

이는 한전의 지금까지 실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유가가 지속되던 2015~2016년 당시 한전은 10조원 넘는 대규모 흑자를 내다 유가가 비쌌던 지난해엔 1조3000억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들어선 저유가 기조로 다시 반등에 성공했다.

한전의 올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2조3322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88.2% 증가했다. 발전회사 연료비와 민간발전사 전력구입비가 3조9000억원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4분기 실적까지 더해진다면 한전은 올해 3조원 안팎의 사상 최고 흑자를 달성할 전망이다.

“실적도 좋은 데 전기요금은 왜올리냐”는 질타가 쏟아질 수 있지만 한전으로선 그만큼 재무안전성이 불안한 수익구조였다. 회사 경영 성과에 따른 등락이 아닌 국제 유가 등 외부 비용에 따라선 더욱 그렇다. 이 불안한 리스크를 털어내는 것이 한전에겐 꼭 필요한 과제였다.

게다가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나선 상황. 풍력이나 태양광 등 정부가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연료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만약 현 전기요금 체계가 유지됐다면 그로 인한 한전의 손실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렇다고 한전이 정부 정책 기조에 반하는 원전 등 값싼 연료를 살 수도 없는 구조다. 그만큼 급박했다.

 
신재생에너지인 해상풍력 관련 이미지/사진=오스테드

◆연료비 부담 덜고, 재구무조 안정화

업계에선 이번엔 시기도 잘 들어맞았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저유가 국면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이 경우 당장 1월부터 연료비 연동제가 반영된 고지서가 날아들어도 앞으로 약 1년간은 변동폭이 크지 않아 요금저항을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다. 한전도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는 지금이 연동제를 도입할 적기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전은 2011년 연동제를 도입하려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유보한 바 있다.

이래저래 한전에겐 전기요금을 개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다. 전기요금이 개편되면서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대한 연료비 등락 부담을 덜고 재무구조를 안정화했다. 동시에 주주가치도 보호할 수 있게 됐다. 한전은 정부가 대주주인 공기업이기도 하지만 뉴욕 증시 상장사다. 특히 외국인 지분율이 24%를 넘는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한전이 시장형 공기업이라곤 하지만 결국 상장사는 수익이 목적”이라며 “그동안 적자 상황에서도 전기요금을 못올려 ‘투자자국가간소송’ 우려까지 나왔는데 이번 개편으로 그동안 쥐고 있던 문제들을 한 방에 털게됐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mt.co.kr

1월부터 날아드는 고지서… 무엇이 달라지나 

당장 내년 1월부터 개편된 전기요금 고지서가 각 가정에 날아든다. 소비자들의 궁금증은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전기요금이 얼마나 오르고 내릴 것인지’다.

◆3개월 단위로 연료비 조정액 부과, 기후환경요금 추가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연료비 연동제’와 ‘기후환경요금 도입’이다. 전기 생산 연료인 석유·가스·석탄가격 변동분을 3개월 단위로 요금에 반영하고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비용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비용 등도 기후환경요금 명목으로 부과된다.

 
한국전력 서울지역사업소에서 직원들이 전기요금 청구서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1월부터 날아든 고지서는 이 연료비 연동제에 따른 요금(연료비 조정액)이 부과된다. 기준 연료비(직전 1년 평균값)와 실

적 연료비(직전 3개월 평균값)를 반영한 차이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 내년 1월을 기준으로 보면 201912~202011월 동안의 기준 연료비와 2020년9월~11월까지의 실적 연료비가 요금에 반영된다.

기후환경요금 항목도 새롭게 추가된다. 그동안은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비용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비용 등은 전력량 요금에 포함돼 있어 명확히 얼마인지 소비자들은 가늠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을 나눠 소비자들에게 고지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1월 적용되는 기후환경 요금은 kWh당 총 5.3원으로 4인가구 기준으로 보면 1855원을 내게 된다. 전체 전기요금의 4.9% 수준. kWh0.3원인 석탄발전소 감축비용은 신규로 반영된다.

◆4인가구 기준 1050원 싸져… 2022년 이후 인상 전망 

다만 1월부터 당장 요금이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측이 내놓은 1월 요금추산에 따르면 월 평균 350kWh의 전력을 쓰는 4인가구의 월 전기요금은 기준 kwh당 3원이 줄어 총 1050원이 떨어진다. 4~6월의 경우엔 최대 하한선인 5원까지 떨어져 전기요금은 최대 1750원이 낮아진다.

현재 유가 수준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까지 약 1조원의 인하 효과가 발생한다는 게 정부와 한전의 추산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유가 기조가 유지될 때다. 코로나19 백신이 등장하고 경기가 살아나면 유가 또한 급등할 전망이어서 업계에선 2022년부터는 전기요금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이전과 달리 전기요금에 바로 상승분이 반영된다.

한전 측도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해 도입 초기인 만큼 ▲조정요금을 kWh당 최대 ±5원 범위에서 제한하고 ▲㎾h당 1원 이내 변동 요인이 있다면 요금을 바꾸지 않는 등 급격한 요금 인상·인하를 억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일종의 보호장치를 마련한 셈이지만 일부 충격을 완화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결국 유가 상승이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큰 틀 자체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개편과 함께 할인제도는 줄어든다. 그동안 전기를 적게쓰는 200kWh 이하 사용 가구에는 매월 4000원의 요금 할인이 들어갔지만 2021년부터는 이 할인요금을 2000원으로 줄이고 2022년엔 전면 폐지된다.

그동안 이 혜택을 받았던 991만가구(연간 4082억원)의 요금은 당장 오를 처지다. 자가용 신재생 에너지 설비 할인 제조 역시 10KW 초과설비에 대해선 올해가 마지막 할인이다. 다만 한전은 취약계층의 지원은 별도 복지서비스 방식으로 요금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mt.co.kr

“원가 10%가 전기요금인데”… 긴장하는 산업계 

내년 1월부터 연료비 변동분이 즉각 반영되도록 전기요금 체계가 개편됨에 따라 산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당장은 저유가 기조가 반영돼 요금이 낮아지겠지만 이후 유가가 오르면 제조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우려가 커진다.

1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 평균 사용량(월 9240kWh)을 기준으로 할 경우 기업이 부담하는 평균 요금은 월 119만원이다. 연료비 연동제가 적용되면 2021년 1분기 기업의 전기요금은 월 최대 2만8000원이, 2분기에는 월 최대 4만6000원이 감소한다.

 
철강업계 관련 이미지/사진=뉴시스

◆철강과 반도체, 석유화학업계… 커지는 불확실성

산업계는 당장은 큰 변화가 없더라도 유가에 따라 전기요금 변동성이 커지면 철강과 반도체, 석유화학 등 전기를 많은 쓰는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철강업계의 경우 판재류를 생산하는 고로업체는 전 공정에 걸쳐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원가의 10% 수준이 전기요금으로 구성된다.

특히 봉형강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전기로 업체에게 전기료 인상은 치명적이다. 전기로 업체들은 말 그래도 전기를 이용해 열을 발생시켜 고철을 녹이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동국제강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력비는 2502억원으로 올해 3분기 영업이익(2416억원)보다 높다. 원가가 오른 만큼 철강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

주요 수요처인 조선과 건설 등 시장이 아직 충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부터 회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의 원가부담이 커지면 연쇄적으로 조선, 건설, 자동차 등 전방 제조업체들의 경쟁력 약화는 예상된 수순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유가에 따라 전기료 가격이 들쭉날쭉해지는 것이어서 그만큼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다”며 “전기료를 비롯해 철광석 가격 등 원가는 계속 올라가지만 경기 불황으로 원가 인상분을 가격에 반영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화학 업계도 장치산업인 만큼 타격이 불가피하다. 가성소다 등 염소계열 제품은 소금을 전기로 분해하는 과정에 따라 원가의 60~70%를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태양광의 핵심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역시 원가의 30~40%가 전기요금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산유량을 감축하기로 하면서 유가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들이 감축을 더 오래 유지한다면 자연스레 전기료는 인상될 것으로 우려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내년 국제유가를 배럴당 평균 48.4달러(두바이유 기준)로 전망했다. 올해보다 소폭 상승한 수치다.

정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는 생산원가에 포함돼 있는데 전기료까지 유가에 따라 움직인다면 사업 리스크가 더 노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 생산 공장을 두고 24시간 가동하는 부품업체 역시 같은 입장이다. 전기료가 올라도 이들 업체는 생산라인을 멈추기 어렵다. 완제품 조립공장은 수요에 따라 멈추기도 하지만 이들 업체는 상황이 다르다. 대형 생산 설비를 껐다가 재가동하는게 때로는 전력 소모가 더 크다. 미세 공정을 위해 먼지가 없는 ‘클린룸’도 24시간 내내 유지해야 한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특수를 누리던 반도체 가격은 최근 하락세를 그리고 있어 전기료가 올라도 제품 가격에 쉽게 전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가림 기자 hidden@mt.co.kr

커지는 국민분노… “‘전기요금 폭탄’ 머지 않았다” 

“이번 전기요금 개편이 전기요금 인상안의 다른 말 아니겠냐.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해놓고 앞으로 재생에너지는 계속 늘텐데 ‘전기요금 폭탄’ 맞는 일도 머지않았다.”

“탈원전하면 전기요금은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죠. 그러면 정직하게 말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탈원전과 전기요금은 관계없다고 하더니 이렇게 기습 개편하면 국민을 속이겠다는 것 아닌가요?”

전기요금 기습개편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한국전력공사(한전)을 넘어 승인을 내 준 정부로까지 번지고 있다.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에너지전환 정책을 선언한 이후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전기계량기 이미지/사진=뉴시스

◆저유가 기조 덕에… 한전과 정부, 꿩먹고 알먹고?

정부의 전기요금 개편안 승인은 사실상 이 같은 말을 뒤집는 꼴. 정부도 이를 의식해 그동안 전기요금 인상을 자극하는 조치에 대해 최대한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한전이 줄기차게 전기요금 개편을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칫 탈원전 갈등을 심화시키지 않을까, 이에 대한 우려를 애써 불식시켰다.

업계에선 정부 스스로도 전기요금 개편을 늦추는 것이 더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발전 단가가 높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스스로 설정한 가격 제한선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부도 이번 개편안으로 석탄이나 원전에 대해 비싼 LNG 등 발전량을 늘리는 데 부담을 덜게 된 셈이다. 다만 ‘탈원전 청구서’라는 비난에선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현재 저유가 기조가 유지되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지나고 경기가 회복되면 유가는 다시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이번 연료 연동제 개편안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신규 원전 백지화, 노후 석탄발전 폐쇄,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된 전기요금 인상 요인도 겹겹이 쌓여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한전의 손실구조를 소비자에게 전가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전기요금체계 개편이 사실상 탈원전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한전이 연료비 연동제 시행으로 얻는 영업이익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 한전의 개편안을 수용하면서 ‘고강도 경영효율화’라는 단서를 내걸었다. 한전과 그룹사에 대한 방만 경영을 쇄신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지만 효력이 얼마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소비자 부담 불가피… 객관성·투명성 부족한 개편 

전문가들은 친환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선 국민도 일정 비용을 내야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객관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정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과 서민경제는 물론 전기 사용이 많은 산업계에 전기료 인상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점에선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코로나19 등으로 유가 등 원료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내년까지는 거의 충격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고 배출권거래제(ETS) 비용이 더 늘어나면 기후환경 비용과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자력발전과 같은 값싸고 한국이 경쟁력 있는 발전원을 배제해 부담을 키우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등과 사전 논의를 하지 않는 등 전기료 개편 과정에서 객관성과 투명성이 부족했던 것은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권가림 기자 sasa708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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